인간의 평균 키보다 네다섯 배 정도 길기 때문에 우리의 구절양장 소화기관은 똬리 치듯 구부러져 있다. 입으로 들어온 영양소를 최대한 흡수하려는 절박함이 고스란히 반영된 해부학이다. 사실 인간이 음식을 먹는 이유는 육안으로 식별 불가능한 우리의 작은 세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그들이 먹을 수 있게 아주 잘게 쪼개주어야만 세포가 살고 세포의 집합체인 우리도 산다. 단백질은 스무 종류의 개별 아미노산으로, 전분은 포도당으로 그리고 지방도 지방산으로 쪼개져야 비로소 소장에서 원활한 흡수가 가능해진다. 광어에서 온 단백질 정보와 감자에서 온 전분의 정보가 이런 기본 단위로 쪼개지지 않은 채 흡수되면 생명체는 곧바로 면역계를 출동시킨다. 해독되지 않은 날것 정보를 내가 아닌 ‘비아’(非我)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따라서 먹고 흡수하는 소화 행위는 곧 서로 다른 생명체에서 도달한 정보를 해체하고 개별화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해체할 수 없는 정보에 노출되는 일은 없을까?

물론 있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석탄 채굴장의 노동자들이 먹고 마셨던 탄가루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은 규제가 심하지만 내열성이 좋아 한때 건축 자재로 흔하게 사용되었던 규산염 섬유 결정인 석면도 인간의 폐나 소화기관에서 해체되지 않은 정보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몸에서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이런 날것 정보에 인간이 노출되면 오랜 잠복기를 거쳐 진폐증(asbestosis)이나 복막 중피종(mesothelioma)이라는 달갑지 않은 병이 찾아올 수 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미세 먼지도 ‘인플라마좀’이라 불리는 면역 반응 복합체를 건드릴 가능성이 높다. 흔히 간과되긴 하지만 담배 연기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립자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다. 이는 미국에서 담배 실험할 때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다. 

환경에서 온 것 말고 우리 몸에서 만들어져서 면역 반응을 부추기는 물질들도 많다. 이런 물질들은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 생체 물질이 과량으로 존재할 때 만들어질 가능성이 부쩍 커진다. 가령 혈중에 다량으로 떠돌던 포도당이 화학적으로 알부민 단백질에 달라붙어 생겨난 물질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현상은 당뇨병 환자에게서 쉽게 발생하리라 예측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과량일 때 날카로운 미세 칼날 결정을 만드는 콜레스테롤도, 통풍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진 요산 결정도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몸 안에서 만들어졌건 환경에서 유래했건 간에 우리는 이런 물질을 통틀어 위험 인자라고 부른다. 이 위험 인자라는 말은 세균이나 병원성 미생물에 대적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면역계가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들어 새로운 위험 인자가 등장했다. 바로 미세플라스틱이다. 죽은 가마우지 배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병이나 어구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미세플라스틱은 큰 플라스틱병들이 파도와 태양빛에 닳고 닳아 잘게 부서지다가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게 크기가 줄어든 것들이다. 감내한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노,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세플라스틱이 설탕과 꿀, 맥주 그리고 소금에서 발견된다는 논문도 최근 출간되었다. 심지어 각질을 제거하는 의약부외품에도 미세플라스틱이 존재한다. 해수면에서 증발된 수증기의 순환을 통해 혹은 버려진 플라스틱이 닳아 육지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다. 

이렇듯 잠깐만 살펴보아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통감하게 된다.

굴이나 홍합을 통해 우리가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이 1만개라고 치고 그 양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자. 평균 크기가 1마이크로미터인 미세플라스틱 1만개를 죽 늘이면 10㎜가 된다. 1㎝다. 1년에 그 정도라니 무시할 만한 양일 수도 있겠지만 이들 미세플라스틱은 세포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인간 진화 역사에서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마시는 정수기 물에서도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된다니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굴러갈 것 같지는 않다.

2016년 한 해에만 인류는 3억2000만t의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이 중 40%가 단순히 물건을 포장하기 위해 쓰였다. 1950년 이후 2015년까지 생산된 플라스틱 양은 모두 83억t이다. 그중 76%에 해당하는 약 63억t이 쓰레기로 폐기처분되었다. 재활용 비율은 고작 10%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현생 인류는 신속하게 분해할 기술이나 미생물도 없는 상태에서 플라스틱을 산처럼 쌓고 있다. 

바다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잇감을 쫓는 물고기는 배 안에 플라스틱, 미세플라스틱 가리지 않고 채워 넣는다. 잠시 후 생선 요리라는 이름의 미세플라스틱 ‘요리’가 우리 식탁에 오른다. 후식으로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용액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하늘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가을 단풍과 함께 떨어진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세포는 미세플라스틱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하지만 그 세포의 집합체인 인간은 오늘도 플라스틱을 만들고 무심코 버린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일반 칼럼 > 과학의 한귀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딱지  (0) 2017.12.20
미세플라스틱의 거대한 세계  (0) 2017.11.22
45억년  (0) 2017.09.20
포유동물의 사치스러움  (0) 2017.08.23
나무는 죽음을 품고 산다  (0) 2017.07.26
방광은 왜 거기에 있게 됐을까  (0) 2017.06.2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