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소설가의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체험이 소설에 드러나는 양상은 다양하다. 소설가가 완벽하게 지워진 소설이 있는 반면 소설가의 실제 모습이 생생하게 만져지는 소설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전적인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어디까지가 작가의 체험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작가의 흔적이 전혀 없는 소설이라면 그런 구별이 쉽지 않다.

1925년에 발표된 채만식의 단편 ‘불효자식’에는 마약 중독자로 인생을 망친 인물이 등장한다. 작중 화자와 동향이자 같은 집에 세들어 사는 칠복이라는 인물은 마약 중독자인데 절도죄로 인한 수감생활, 어머니의 간곡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마약을 끊지 못하고 파멸해 간다. 이처럼 마약에 중독된 인물의 몰락 과정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던지 이 소설을 발표한 뒤 채만식은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 마약에 중독된 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았다. 물론 채만식과 소설의 인물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채만식의 개인적 체험과 완벽하게 무관하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비약하자면 채만식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게 분명해 보이는 소설가의 길을 걷는 심정을 몰락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마약에 빠져드는 인물에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모호한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적절한 용어가 ‘미적 거리’이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세월호 참사를 소설로 쓰려고 한다면 그이는 우선 세월호 참사와 심리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깊이 빠져들거나 멀어지면 안된다. 작가라면 익숙하고 밀접하기 때문에 잘 안다고 믿는 것들을 의심할 줄 알아야 하며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 시선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적이고 은밀한 체험을 소설로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러한 생각들이 미적 거리에 대한 오래된 오해라고 여긴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는 카메라의 눈이라 일컫는 기법으로 서술되었다. 이 소설의 매력은 언뜻 보기에 세밀화에 가까운 정교하고 객관적인 묘사에 있는 것 같다.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대상에 대해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미 언급했듯이 <질투>의 진정한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감정이 제거된 객관화된 장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질투를 느낄 수 있다. 감정을 제거하여 감정을 재현해낸 셈인데 그럴 수 있었던 건 소설의 내부에 존재하면서도 소설의 바깥에 있는 듯한 서술태도가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긴장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이 소설의 화자는 남편인 것처럼 보인다. 그건 곧 화자가 소설의 인물이라는 뜻이며 소설의 내부에서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질투>의 화자는 마치 소설 바깥에 존재하는 것처럼 무심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로 이 불가능해 보이는 위치, 내부에 존재하는 동시에 외부에 존재하는 화자, 동시에 존재하면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화자가 <질투>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미적 거리라는 게 없다. 만약 있다면 동요하고 갈팡질팡하는 화자가 있을 뿐이다. 전혀 객관적이지도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도 못하는 화자가 있을 뿐이다. 질투에 사로잡혀 집요하게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이 있을 뿐이다.

다시 돌아가 보자. 만약 누군가가 세월호 참사를 소설로 쓰려고 한다면 그이는 우선 세월호 참사 앞에서 한없이 흔들려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거기에서 길을 잃어야 한다. 그 내부에서 기꺼이 흔들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미적 거리가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미적 거리를 실현하려는 시도가 대체로 실패하는 이유는 한 걸음 멀어져서가 아니라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미적 거리를 실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질투에 사로잡힌 남편의 집요한 시선이 그러했듯이 세월호 내부에서 더 흔들리고 아파하고 분노해야 한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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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