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만히 들여다보라

아직 그 속에 갇힌 천둥소리 물소리 들리지 않는가

백만년 전 그 뜨거운 대지 속을 날아가던 잠자리의 날갯짓, 또 그 속을 흐르던 피들의 숨 가쁜 일어섬까지.

 

  2

발가락을 모으고

푸른 강물 흐르는 열 손가락을 모으고

온몸이 귀가 되거나

착한 눈빛이 되어

세상 죄 없는 것들의 이름과

아직 말이 되지 않아 또 죄 없는 것들의 이름을 하늘 가득 떠올렸다.

 

  3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바위 하나 내 살 속에 들어와 앉았습니다.

숨 쉬지 않고 풀어놓은 숨이

먼지 같은 내 생을 자꾸만 둥글게 잡아당겼습니다.

 - 이승희(1965~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집에서 멀지 않은 오동근린공원에는 유난히 바위가 많다. 흔하디흔한 화강암과 꽃들이 서로 성질이 다른데도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한 뿌리에서 나온 것 같다. 꽃이 피면 바위는 완만한 곡선이 더욱 둥그러져서 제 단단한 성질을 버리고 따뜻한 빵이 되어 부풀어 오르는 듯하다. 땅 위에 커다란 빵이라도 솟은 듯 고양이나 까치들이 모여 떠날 줄 모른다. 바위에 엉덩이를 대고 있으면 그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이 몸으로 마음으로 스며들어 일어나기가 싫다.

바위도 아주 오래전에는 냇물이고 바람이고 나무이고 꽃이었을 것이다. 지층에 묻힌 기나긴 시간을 되감기하여 한정 없이 풀어놓으면, 바위가 되기 전의 강과 들과 거기 뛰놀던 온갖 짐승들이 뛰어나올지 모른다. 이 생명체들과 사건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응고되어 바위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 죄 없는 것들의 이름과/ 아직 말이 되지 않아 또 죄 없는 것들의 이름”이 여전히 이 화석에 살고 있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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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