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대학 시절 별명은 ‘무계(無稽)’였다. 황당무계하다는 뜻이다. 무계 선생은 대학 4년 내내 노란 양말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고 입심도 좋았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밥먹을 때마다 ‘김대중·김영삼은 어떻고 이철승은 어떤 사람이다’고 평가했다. 정치 상황을 주르르 꿰고 있었다. 친구들은 “너는 검사하지 말고 국회로 가라”고 했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처음으로 미팅을 했다. 그 자리에도 검정 고무신을 신고 나갔다. 상대는 이화여대 영문과 학생. 경북여고 출신이었다. 홍준표가 나도 대구에서 고교를 나왔다고 하니 여학생이 물었다. 경북고냐? 아니다. 사대부고냐? 아니다. 계성고냐? 아니다. 그러면 어디냐? 영남고를 나왔다고 하니 그 여학생이 벌떡 일어나서 나가버렸다고 한다. 비평준화 시절 대구시내 서열 3위 안에도 들지 못한 고교를 나온 촌놈과 상대하기 싫었던 거다. 홍준표는 “화장실에 간 줄 알고 그 자리에서 30분간 기다렸다”고 했다. 그에게 이런 불편한 기억들은 숱하다. 검사 시절 그를 지켜본 전 검찰 고위간부는 말했다.

“홍 검사는 권위나 조직의 획일적인 논리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불우했던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콤플렉스도 있었던 것 같다. 검찰이 어떻게 보면 엘리트 조직 아닌가. 학연이나 혈연 등 화려한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돈키호테 식 튀는 언행은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승부수가 아니었나 싶다.”

홍준표가 제1야당 대표로 돌아왔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가 두 달도 되지 않아 정치 전면에 복귀하기는 처음이다. 그는 대선 패배에 고개 숙이지 않았다. 되레 죽어가던 보수세력을 24% 득표로 살렸다고 했다. 허세만은 아니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7~10%다. 궤멸 그 자체다. 원내의석 107석을 가진 제1야당의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에 선거인단 25%만 투표에 참여했다. 무서운 무관심이다. 헌정 사상 보수의 적통을 내세우는 정당이 이런 푸대접을 받아본 적은 없다.

한국당은 부활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난망하다. 홍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운동권 정권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1980~1990년대 냉전적 사고 그대로다. 당이 처한 불리한 현실은 언론 탓이라고 한다. 참담한 지지율은 여론조사 기관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홍준표는 시대정신을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열망은 앙시앵레짐(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이 주사파 정권임을 인식하면 문재인 정부는 오래 못 갈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노무현 시절에 야당을 10년 해본 사람이다. 야당을 어떻게 하는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현재 정치판에 없다”고도 했다. 지금 시민은 김대중·노무현 시대 시민이 아니다. 불의한 대통령을 끌어내린 깨어난 시민이다. 시민들은 그런 홍준표를 ‘신(新)주사파’라 부른다. 취객이 주사(酒邪) 부리듯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 정치인이란 뜻이다.

보수주의는 이전의 것을 무조건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영국 보수당의 아버지 디즈레일리는 시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찾아내고, 시대 이슈를 선점하는 안목과 능력이 있었다. 그는 보수가 더 이상 사회개혁에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를 통해 보수당은 전국정당이 될 수 있었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약자를 배려하고 분배를 중시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로 당의 외연을 넓혀 집권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에 와서 “뭔가를 지키고자 한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변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변화는 어느 한 계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이 아니라 모두의 정당임을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달라질게요.’ 한국당의 전당대회 슬로건이었다. 콘셉트는 영국 보수당이 걸었던 길과 같다. 결정적인 차이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무엇을 바꿀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지지층에 희망을 주는 새 얼굴도 없다. 한국당의 주류는 여전히 ‘TK(대구·경북) 친박계’다.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개혁보수세력은 비주류로 밀려 있다. 이마저도 바른정당이 떨어져 나가면서 더 위축됐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고 했다(시인 이상). 기교는 비전이 아니다. 좌충우돌, 막말, 현란한 수사(修辭) 따위로 미래를 열어갈 수는 없다. 돈키호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으려 했다. 홍준표는 무엇을 향해 돌진하는가.

박래용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