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의례가 있다. 골방에 들어가 가운데 자리 잡고 눈을 감고 반가좌를 틀고 앉는다. 그날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집중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상념으로 마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중한다는 의미는 내 자신을 새로운 시점에서 가만히 들여다본다는 의미다. 내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쌓여 편견과 고집이 되어버린 내 에고를 벗겨야 한다.

이 무식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제와 똑같은 과거의 나, 죽은 나로 똑같은 삶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내가 가보지 않은 내 마음의 심연(深淵)으로 들어가, 바로 그날 해야 할 바를 깨닫게 된다. 이 심연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나만의 심연이다. 나는 이 임무를 대담하고 간결하며 거침없이 완수할 것이다. 사실 그 일을 마치지 않아도 좋다. 내가 그 과업을 노력하는 순간에 나는 이미 완수했기 때문이다.

이 심연의 존재를 알고 운명적인 여정을 시도하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인류는 기원전 1만년경 별들의 운행만큼 심오한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중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보리와 밀이 시절을 쫓아 곡식이 되어 자신들의 양식이 된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사냥과 채집에 의존하던 인류의 조상들은 한곳에 정착하여 생활하기 시작한다. 봄에 파종하고 여름에 김을 매고 가을엔 추수한다. 그리고 겨울엔 자기가 사는 지역의 특산품들, 예를 들어 옷감이나 공예품을 만들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중동지방에서 장거리 여행을 하며 저녁엔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과 달을 보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곤 했다.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당시 사막에서 장거리 대상 무역을 하던 사람들은 한 음유시인이 노래한 죽음을 극복한 한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이름은 ‘길가메시’다. 인류 최초의 도시인 우룩(오늘날 이라크 남부도시 와르카)을 건설한 왕이다. ‘길가메시’라는 수메르어 이름의 의미는 “노인이 청년이 되었다”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최초의 신화로 기원전 2300년부터 그에 관한 여러 노래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더니 기원전 14세기경 한 사제이자 시인에 의해 3600행 정도의 노래로 고정되어 토판문서에 기록되었다. 이 시인의 이름은 ‘신-레케-우닌니’다. 그는 바빌로니아 사람이 아니다. 기원전 15세기경 바빌로니아를 침공하여 다스린 카사이트인이다. 우리는 아직 카사이트인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인종인지 알지 못한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간의 두 가지 욕망을 다룬다. 하나는 명성, 권력 그리고 부에 대한 추구와 다른 하나는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영생에 대한 추구다. 서사시의 전반부는 신들에게 도전하여 우주 질서를 혼돈에 빠뜨린다. 반신반인(半神半人)인 길가메시는 자신의 친구이자 ‘제2의 자아’인 엔키두와 함께 신에게 도전한다. 이들은 신들의 거주지를 짓는 데 사용하는 백향목을 지키는 괴물 후와와를 살해하고, 전쟁의 여신인 이슈타르를 욕보이고, 하늘의 황소인 구갈라나를 살해한다. 길가메시는 신들이 가진 명성과 권력을 가진 듯 보였다.

그러나 신들은 길가메시의 엔키두를 병들어 죽게 한다. 길가메시는 이제 자신이 신들처럼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나 지하세계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는 우트나피시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영생의 비밀을 듣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선다. 그는 우트나피시팀을 만나기 위해서 ‘돌아올 수 없는 바다’를 건너 자기 자신이 죽어야 한다. 길가메시는 영생을 찾기 위해 자신이 죽기로 결심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로 여행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우트나피시팀을 만난다. 그러나 그는 놀란다. 우트나피시팀이 자신과 너무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영생을 찾아 목숨을 건 이 숭고한 여행에서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시인 신-레케-우닌니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한 에피소드를 첨가한다. 우트나피시팀은 길가메시에게 불로초(不老草)가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페르시아만의 가장 깊은 장소에서 자라는 바다 식물이다. 길가메시는 진주를 캐내는 잠수부처럼 다리에 돌을 동여매고 누구도 여행하지 못한 바다의 멧부리, 심연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불로초를 따온다. 길가메시는 이제 자신이 왕으로 치리하는 우룩으로 돌아가 적당한 시간에 이 영생의 식물을 먹을 것이다. 우룩으로 가는 길은 더웠다. 그는 옷과 불로초를 놔두고 연못으로 들어가 목욕을 한다. 그때 어디에선가 뱀이 나와 불로초를 먹고 자신의 껍질만 남겨둔 채 사라져버렸다. 이 순간은 불멸을 찾아 나선 길가메시 여정의 끝이지만, 동시에 길가메시 불멸의 시작이다. 4000년이 지난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시인은 고대 바빌로니아어로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샤 나그바 임무루, 이시티 마티”(제1토판 1행). 이 문장을 번역하자면 “나라의 기초인 심연(나그바)을 본 자”이다. 영웅은 영생을 찾으려는 여정을 용감하게 시작하고 신에게 도전하고 자신의 심연을 본 사람이다. 시인은 다시 노래한다. “루크탐 일라캄-마 아니흐 슈프슈시”(제1토판 9행). 번역하자면 “그는 먼 길을 떠나 거의 죽을 뻔했지만, 오히려 새 힘을 얻었다.” 내가 감행해야 할 인생의 여정은 무엇인가? 나의 심연은 어디에 있는가?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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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