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늙은 말이 소금수레를 끌고 태항산을 오르는데, 아무리 안간힘을 써 봐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그때 지나가던 어떤 이가 이 모습을 보고는 다가가서 그 말을 어루만지며 통곡하고 옷을 벗어 걸쳐 주었다. 그러자 늙은 말이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을 찌를 듯이 슬프게 울부짖었다. 이 말은 본디 천리마인데,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평생 소금수레만 끌며 늙어간 것이다. 형편없는 몰골을 한 이 말이 천리마인 줄을 알아보고 통곡한 사람은 말을 잘 감별하고 조련하기로 유명했던 백락이었다. 인재는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인재를 알아볼 백락이 없는 것이 불행이라며 인재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거론되곤 하는 이야기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런데 장자(莊子)는 이 이야기를 다르게 비튼다.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들판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이 말의 본성이다. 그런데 백락이라는 자가 나타나서 좋은 말을 가려내어 명마로 키운다면서 편자를 박고 굴레를 씌워 먹이와 채찍으로 길들이는 바람에 그 본성이 망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정한 기준을 정해두고 인위적으로 맞추려 함으로써 불행이 야기됨을 경계하는 맥락이다. 다들 천리마에만 눈이 가 있을 때 장자가 본 것은 재능이나 의사와 무관하게 천리마로 길러지다가 죽고 버려지는 대부분의 말들이다.

개선하려는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과 사회는 여전히 편협한 기준에 의한 줄서기를 요구하고 있다. 재능과 관심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들은 일찌감치 차단되어 버린 채 이른바 ‘주요 과목’의 비중만 오히려 더 커졌으며, ‘서열 높은’ 대학, ‘인기 있는’ 학과와 ‘안정적인’ 직장의 관문은 점차 더 좁아져 간다. 백락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천리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에 내몰리기 때문에 불행하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이 21세기라는 데에 있다. 어제의 손익계산서가 금세 휴지 조각이 될 정도로 급변하는 이때에, 그다지 창의적일 필요도 없고 그저 당장 안정적인 것처럼 보일 뿐인 진로로 우수한 인재들이 몰린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청년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게 하고 그 기회비용을 국가사회가 파격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백락 없이도 저마다 천리마가 되어 내달릴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우 울음소리 가득한 나날  (0) 2016.11.02
귀로 먹는 세상  (0) 2016.10.19
백락과 천리마  (0) 2016.10.05
신념의 정치, 바람의 정치  (0) 2016.09.21
같음과 다름  (0) 2016.09.07
국기를 세우려면  (0) 2016.08.2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