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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아니라 낮이다. 덕분에 사방이 잘 보였다. 경사가 있었다. 미끄러지면 곧바로 바다로 풍덩, 빠지는 곳이었다. 물은 물렁물렁해서 나비만 한 체중이 아니라면 그냥 그대로 푹 꺼질 것이다. 나무들은 가파른 비탈 따위는 간단히 제압하고 지구의 중심을 향하여 뿌리를 뻗고 있었다. 바다와 면한 곳이지만 나무가 먹는 건 짠물이 아니었다. 여기는 거제도 벼락바위 근처, 우리 국토의 최남단 한 자락이다. 아직은 한창 겨울인가.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지만 그건 달력 속의 사정이다. 남해안 바닷가 언덕에는 정유년의 봄꽃들이 벌써 피어나고 있었다. 뫼제비꽃, 붉은대극, 복수초를 눈으로 만지고 손으로 접촉해 보았다. 신기한 감정이 일어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또 시작이군, 이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이곳은 겨울에도 그리 춥지가 않아서 나무가 낙엽을 만들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잎을 바꿀 필요가 없는 상록수들. 그처럼 육중하게 자신만의 한 세계를 이룩한 나무들 사이로 작은 나무가 있다. 다 자란다 해도 겨우 허리춤을 찌르는 정도이다. 짓궂게 장난을 친다면 한달음에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나무도 있다. 키가 작아서 아주 다정하고 몸피가 작아서 아주 다감한 나무. 제주도에도 있지만 뭍에서는 단지 몇 군데에서만 관찰되는 아주 희귀한 나무. 백서향이다.

백서향은 거제도 맨 아래쪽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한두 포기가 아니라 무리지어 띄엄띄엄 사이좋게 산촌(散村)의 인가처럼 흩어져 있다.

다른 나무들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동안 백서향은 깨어 있었다.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줄기를 따라 어긋나게 달리는 잎들. 둥근 계단처럼 오른 끝에 십자 모양의 꽃들이 야무지게 다발을 이루고 있다.

올해 처음 만난 나무의 꽃이 백서향이라서 좋았다. 이름에서부터 그윽한 향기를 자랑하더니 실제로 코끝을 접근하자 은은한 향이 풍겨왔다. 향기도 담겠다는 태세로 카메라들 들이대던 한 꽃동무의 속삭임이 나비처럼 날아와 딱딱해진 내 가슴을 벼락처럼 때렸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사랑의 감정이 녹아 솟아나오는 향기로군요! 백서향, 팥꽃나무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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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