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언급되는 것 중의 하나가 ‘양극화’다. 양극화는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짐’이라고 풀이된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라면 누구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애써 막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조장하여 거기서 이득을 보려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양극화가 불가피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경제성장이 둔화된 채 재벌이 세습되는 과정에서 이는 더욱 가중되어서,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출발선이 아예 다른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분노한다.

양극화가 경제적인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이 시대의 진정한 아픔이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눌 수 없는 슬픔과 분노로 이 사회 구석구석을 다른 눈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 이들과, 교통사고 가지고 뭐 그리 요란을 떠는지 모르겠다며 비아냥거리는 이들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짐’이 존재한다. 100만 촛불을 두고 험한 말들을 해대는 분들을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이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우리와 비슷해야 할 존재가 너무도 달라지고 멀어졌을 때 그들을 우리는 ‘괴물’이라고 부른다. 연일 뉴스에서 만나야 하는 그 괴물들에게는 아무런 죄책감도 자기 성찰도 없다. 이미 엄청난 재산을 손에 쥐고 있지만 이권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다면 법망을 피해 아무렇지도 않게 뒷돈을 찔러줄 수 있는 이들이다. 그 돈이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씻어주고도 남을 만큼의 액수라는 데에 분노하는 이들과, 법적으로 빠져나갈 수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사이에는, 너무도 머나먼 거리가 존재한다.

‘면이무치(免而無恥)’라는 말이 있다. 도덕과 예의가 아니라 행정과 형벌로만 단속하면 백성들이 법망만 피해갈 뿐 부끄러움이 없어지게 된다는 공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범법행위 자체보다도 바로 그 부끄러움 없는 표정과 답변 때문에 누군가는 치가 떨리는데, 평생 법으로 먹고살아온 그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말만 안 하고 그 자리를 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까지고 피해갈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사법이 엉성하지는 않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 도덕과 예의에는 자비와 긍휼이 있지만 법에는 없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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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