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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이 질문은 사람을 곤란하게 한다. 보수는 ‘새로움이나 변화보다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하는데, 전통적 가치의 소중함을 외면하는 진보는 없다. 진보는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 변화나 발전을 추구’한다는데, 긍정적인 변화나 발전이 싫다는 보수 또한 없다.

북한·미국, 노동, 환경, 성장·분배 등 주제별로 구분하려는 시도도 있는데,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이런 구분법은 불완전해진다. 그때그때 입장이 달라지고 뒤엉키니, 난감해진 사람들은 “나는 이도저도 아닌 중도”라고 말하게 된다.

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주말, 택시기사에게 “인사동 가주세요” 하니 그는 “오늘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다”며 불만스러워했다. 택시기사가 말을 이었다.

“주말에 집회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뭡니까.” 영업에 지장이 있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가 덧붙였다. “영업엔 지장 없어요. 내 말은, 손님처럼 주말에 가족 나들이하는 사람도 많은데 불편하게 도심에서 왜 저 난리냐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보수라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은 대개 거리의 집회를 반대한다. 차가 막혀서든 시끄러워서든, 불법이든 합법이든 집회 거부감이 강하다. 반면 한국에서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은 집회를 지지한다. 이보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을 아직 못 봤다. 이 얘기를 꺼낼 때마다 각계의 인사들이 무릎을 쳤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직장의보노동조합 통합반대집회_경향DB


물론 소음 문제나 주변 상가의 매출감소, 교통불편의 문제가 있고 ‘주말 나들이의 자유’도 침해될 수 있다. 집회의 본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보장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집회 등 표현의 자유는 다른 헌법적 권리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다. 마음대로 생각해 표현하는 게 인간의 핵심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양심·종교·학문의 자유 등도 여기에 속한다.

집회가 열리면 다소 불편해도 감내해야 한다. 구급차가 다가오면 불편해도 내 차를 옆으로 옮겨준다. ‘불편’보다 우월한 가치란 게 있다. 한국적 보수는 헌법에 명시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셈이다. 자유로운 생각과 목소리를 금지한, 일제와 군사독재에서 비롯된 ‘복종 사회’의 뒤틀린 관성이다.

집회는 소통을 위한 인간의 기본권이자 사회적 역동의 전제 조건이다. 그 반대는 통행금지다. 지금 야간 통행금지를 되살리면 국민들은 화병에 걸린다. 내수경기를 시작으로 국가경제는 쓰러져버린다. 한국적 보수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경제가 좋았으므로 다시 실시해야 한다”는 말이 개그란 걸 알면서도, 그 반대 방향이 옳다는 생각까진 못한다.

전체 비율은 몰라도 각계의 지도층 인사들 상당수는 한국적 보수인 듯하다. 8만명 중 80명이 과격한 행동을 하면 ‘폭력시위 프레임’을 갖다대 전체 집회를 비난한다. 완벽에 가까운 평화적 집회를 해도 ‘시민불편’ 운운하며 욕한다. 정부와 검찰·경찰은 “불법 집회에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지만, 나중에 법원 판결을 보면 뭐가 불법이고 합법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냥 집회는 안된다는 것이다. 항공모함을 움직이는 해외 강자들에겐 찍소리 못한다. 중무장한 ‘반국가단체’가 우리 민가를 포격해도 그대로 얼어붙는다. 그러면서 비무장한 자국민들은 사상 최대량의 캡사이신과 물대포로 공격하는 ‘비겁 국가’를 이끄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이들은 부지런히 ‘엄정한 법 집행’을 외치며 승승장구한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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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