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군주 환공이 노나라를 쳐서 대승하였다. 노나라 장공이 화친을 요청하여 협정의 자리에 마주 앉았는데, 갑자기 노나라 장수 조말이 환공에게 비수를 들이대며 빼앗은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환공이 어쩔 수 없이 승낙하자 조말은 순순히 비수를 내던졌다. 눈앞의 위험이 사라지자 분노한 환공은 땅을 돌려주기는커녕 조말을 당장 죽이려 들었다. 환공을 모시고 있던 관중이 말했다. “약속은 약속입니다. 조말을 죽이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신의를 저버린다면 천하의 지지를 잃고 말 것입니다.” 환공이 분을 삭이고 약속을 지키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여러 나라들이 제나라를 신뢰하고 의지하게 되었다.

환공의 입장에서 생명의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한 약속을 무시하고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무력을 행사한다 해도 당장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관중은 ‘눈에 보이는 것’과 ‘자신이 가진 능력’만을 결정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뒤의 무엇’을 볼 것을 제안하였다. 그것은 눈앞의 이익보다 더 크고 지속적인 ‘이익’일 수도 있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는 ‘가치’일 수도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메르스 사태 등 근래 우리를 아프게 했던 일련의 일들은,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함으로써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당장의 경제성만을 이유로 어마어마한 재앙의 가능성을 마냥 덮어두고 있는 원자력(핵)발전소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면 아파트 경비원을 언제든 집단 해고해도 된다는 사고방식 역시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맥락이다. 입장의 차이에 따른 논란의 여지는 물론 있다. 그러나 논의의 장 자체가 눈앞의 이익에 의해 원천적으로 묵살되어버리는 것이 이 시대의 대세라는 점이 문제다. 보다 장기적인 이익이나 속 깊은 가치를 논하자는 제안은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사치스러운 일에 불과한 것인가.

정작 큰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가장 큰 소리는 희성(希聲), 즉 들리지 않는 소리라고 했다. 이익에 밝다고 하는 우리의 눈과 귀는 따지고 보면 얼마나 제한적인가. 잠시 멈춰 서서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있는 것, 귀에 들리지 않지만 마음 기울여야 할 것들은 없는지 가만히 되물을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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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