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과서에서 접했던 조각품을 육안으로 만질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흐린 날씨와 그늘을 사랑했다는 자코메티. 그의 조각상을 보는데 ‘쪼대’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 조몰락거렸던 검붉은 찰흙이 쪼대다. 시골 뒷동산 진달래 덤불 근방에서 파낸 쪼대로 어설프게 만들었던 조각처럼 자코메티의 두상은 아주 거칠고 투박하였다. 드디어 명상의 집. 그 유명한 <걸어가는 사람>이 부지런히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지만, 아쉬워라, 사람이란 몸은 물론이요 그 몸에서 뻗어나오는 그림자까지 포함하는 것일진대, 달랑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조각만을 중앙에 전시해 두고 있지 않은가.

도떼기시장 같은 전시장을 빠져나와 집결장소인 송파역으로 이동했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소장 현진오)가 이끄는 식물탐사대의 무술년 첫 산행이 있는 날이다. 오후 2시가 되자, 일행을 태운 버스가 산청의 동의보감촌을 향해 부릉부릉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허준의 발자취가 묻어 있는 필봉산과 왕산을 오르는 길. 오고가는 것으로 가득 찬 산중에서 자코메티의 한 어록이 자꾸 떠올랐다. “인생에서 그 부질없는 것들을 걷어내고 그냥, 무작정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보이는 대로 실제 크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자코메티. 큰 작품을 만들려고 높이를 키우다보니 가늘고 긴 자신만의 형상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물오른 국수나무 가지에서, 말라비틀어진 진달래의 열매 껍질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형상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막 나무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식물성의 눈빛들!

벌써 확 들이닥친 여름의 기운이 물씬하다. 류의태 약수터 아래에서 많은 꽃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활짝 핀 복사나무가 눈을 때린다. 개울물가에서 보아야 제격인 나무이다. 이태백의 ‘산중문답’의 한 대목, 복사꽃 떨어져 아득히 물 위로 떠내려가네, 그 그윽한 풍경을 선뜻 데리고 오는 복사나무. 흘러가는 물 옆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복사나무. 하얗고 붉은 꽃잎과 그 꽃잎 뒤로 너무나도 선명한 초록의 잎이 그림자처럼 빠져나와 도드라지게 받쳐주는 복사나무. 장미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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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