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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때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한 이가 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다른 직업을 찾아 “비행기 조종”과 “지리”를 배웠고, 세계를 날아다녔으나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오던 끝”에 사건을 겪었다. “여섯 해 전”의 비행 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것이다. 그곳에서 열흘을 보낸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풍경”을 그렸다. “어린 왕자가 이 땅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림. 어린 왕자는 여섯 개 별을 거쳐 지구별에 당도해 꼬박 한 해를 여행했다. 그 마지막 열흘간 둘은 친구가 됐다.

황현산 선생의 번역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접한 게 근 25년 만이다.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민망한 궁금증은 같다. 어린 왕자와 비행사는 몇 살일까? “삶을 이해하고 있”다면 “숫자 같은 것이야 우습다” 여기고 “상자를 꿰뚫고 그 속에 있는 양을 볼 줄”은커녕 화자가 비꼰 대로 “그 앤 나이가 몇이지?” 묻는 어른 행세지 싶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본문엔 어린 왕자 그림이 22회 나온다. 이를 두고 비행사는 “영 딴판”이라거나 “너무 크고 너무 작다”고도 썼으나 엉성한 듯 강렬한 그림에 빠진 난 ‘음, 어린 아이네’ 하고 퉁쳤다.

반면 비행사가 생텍쥐페리라고 믿었던 나는 “여섯 해 전”의 단서를 이번에 연보에서 찾았다. “파리~사이공 간 비행시간 신기록”을 위해 비행한 그가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 5일 동안 사경을 헤매며 걸은 뒤, 한 대상에게 발견되어 극적으로 구조”된 때가 35세다. 사하라 사막 동부에 떨어진 이때라면 글을 쓰고 책이 나온 42~43세의 6년 전과 안 맞았다. 화가이길 포기한 여섯 살이 생생해서 6년 전으로 각색하고 5일간의 사막 체험 역시 열흘을 채우고도 남았을 터라 그리 됐겠지, 하고 또 퉁쳤다. 그러고서 35세의 그 무렵 나에게 온 “한 아이”를 회상했다. 묻는 것엔 “대답하지 않으면”서 “별들이 아름다운 것”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속삭여준 어린 왕자를 떠올리려 했다. 하나 나는 “그 애가 누구인지 여러분은 잘 알리라”던 “여러분”이 아니었고 “그때는 친절을 베풀어 달라”던 “그때”와 “친절”도 몰랐다. 나는 어린 왕자가 다녀간 여섯 개 별의 “우둔한 어른들”이자 지구별의 전철수나 장사꾼 또는 “정원 하나에 이렇게 똑 닮은” 5000송이 장미꽃이었다.



다행히 나는 여섯 해 전에 어린 왕자를 만났다.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오던 열 달의 여행 중엔 “서두르지 말고 바로 별 아래에서 잠시 기다리라”는 비행사의 충고를 따랐다. 그러자 아이가 다가오는 순간 “그 애가 누구인지” “알리라”던 “여러분”이 되었다. 이 기적은 우리 아이가 어린 왕자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세 번의 심장 수술과 한 번의 심장 정지를 겪고 지적 장애 판정을 받은 어린 왕자는 과연 누구에게 장애가 있는가를 알려주며 “바로 여기”에 있다. 선생은 어린 왕자가 여우를 통해 ‘길들인다’를 배운 뒤 “뱀에게 물리기로 결심”하는 “극단적으로 과격한 귀향의 방법”을 통해 “제 별로 갔다”고 썼다. 나는 이 대목을 “사랑으로만 권태를 치료할 수 있을 때” 우리 아이가 같은 방법으로 “제 별”에서 ‘지구별의 우리에게 왔다’로 읽었다. 마침 아이가 여섯 살이다. “멋진 직업”을 포기할 때라서 여우의 ‘길들인다’에 조바심이 났으나 선생의 글 덕에 진정됐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니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우둔한” 나에겐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나잇값도 못하는 주제’의 어른은 반드시 불시착해야 하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은 철새들에게 연결된 줄을 잡고 날아가야 한다. 44세의 생텍쥐페리는 “마지막 정찰 임무”차 비행하다 적군의 정찰기라는 뱀을 통해 “제 별로 갔”을 것이다. 훗날 독일군 비행사는 자신이 그를 격추시켰으며 <어린 왕자>의 애독자인 자신은 그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작년엔 할리우드가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를 흥행시켰다. 나의 어린 왕자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리하다가 “멋진 직업”부터 되찾아야겠구나, 하고 책장을 덮었다.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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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