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꺼먼 키다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별도 없는 시꺼먼 밤, 공기의 울타리 시꺼먼 산. 시꺼먼 혀를 궁글리는 차우차우 강아지들, 시꺼먼 내 그림자가 사는 집마당. 서로 시꺼먼 눈동자를 주고받는 까무잡잡 까마귀들. 벌겋게 달아오르기 직전의 시꺼먼 철제 난로, 흰눈에 덮이기 앞서 시꺼먼 기와 지붕. 검은 현무암으로 깎은 석등과 검은 돌들. 동네 앞길을 데구루루 굴러가는 리어카 바퀴도 블랙. 굶은 고라니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올 때는 외등도 촉이 나가 숨죽이는 블랙홀. 거무스레 냇물에 잠겨 있는 징검돌을 밟으러 밤중에 나가보면 시냇물조차 먹물처럼 시꺼멓고….

비틀스가 노래한 ‘블랙버드’를 사랑한다. “어둠 속에서 검은 새가 노래하네. 날개가 부러져 파닥거리면서. 오직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왔네. 침몰한 눈을 껌벅이며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검은 새는 눈을 떴네. 생을 다해 자유를 꿈꾸는 새여.” ‘펄잼’의 보컬인 에디 베더가 이 노랠 기가 막히게 불렀다. 자리한 모든 관중들이 따라서 새소리를 내는데, 볼 때마다 전율케 하는 감동이 있다.

문화융성은 개뿔, 문화충성의 시대를 만들려다 들통이 난 블랙리스트 사건. 이번만은 뿔난 블랙버드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다. 새들은 경계 없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유혼을 퍼트리는 것이 소임. 낮에는 흰 구름과 흰 새, 밤에는 검은 산과 검은 새. 만약 새들이 휘파람 소리를 더 이상 내지 않는다면 지상은 적막한 동굴 속일 뿐.

전설에 따르면 하늘을 덮을 만큼 크고 영험한 검은 새가 한 마리 있었는데, 밤새 숯검댕이 같은 어둠을 집어삼켜야 하는 운명이었단다. 마침내 어둠을 다 삼킨 뒤 그걸 뱉어내자 불덩어리가 되었고, 아침 태양이 그렇게 해서 떠올랐다는 얘기. 그간 어둠을 집어삼켰다면 이젠 뱉어내야 할 때. 침몰하는 선상의 아이들아. 가만히 있지 말고 헤엄쳐 나오라. 바다여! 아이들을 어둠 밖으로 빨리 내뱉어다오. 블랙리스트 검은 새들도 주눅들어 주춤하지 않기를. 생을 다해 자유를 노래하는 검은 새들이여.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염병과 콜라병  (0) 2017.02.06
머시락  (0) 2017.01.26
블랙리스트  (0) 2017.01.19
구둣발차기  (0) 2017.01.12
우주의 기운  (0) 2017.01.05
육식에서 채식으로  (0) 2016.12.2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