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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개나리, 노랑나비, 팽목항 노란 리본. 온통 세상이 노란 빛깔이구나. 애기 노랑꽃떨기들 잡초들도 공터 담벼락 아래 무장무장 번지는 중이렷다. 맑게 세수를 할 수 있게 봄비가 내려주니 꽃도 나무도 싱그럽고 상쾌해. 서효인 시인의 시집 <여수>를 읽다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바닷가 어디로 훌쩍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 그런데 며칠 비가 내리는 통에 마음만 굴뚝이었다. 비가 오면 비도 손님이니만큼 잘 모셔야지. 어둑어둑할 때 빗소리는 심장이 쫄깃해져.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의 독일 가곡을 듣다가도, 미안 쏘오리~, 엔츌디궁(Entschuldigung·죄송합니다) 하면서 전축을 서둘러 끄고는 한다. 친구랑 통화하다 말고 “빗소리 들어볼래?” 함석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 감상회. 봄비처럼 촉촉한 여인이 나에게 “우리 빗소리 같이 들어요” 한마디 내민다면 무장해제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웨스트버지니아에 사는 환경운동가 자넷 파웃은 어린 딸 줄리아와 ‘들을 수 없는 소리 듣기’ 놀이를 만들었단다. 나무 수액이 차오르는 소리, 눈송이가 만들어져서 떨어지는 소리, 해가 뜨는 소리, 달이 뜨는 소리, 풀잎에 맺힌 이슬의 소리, 싹이 움트는 소리, 땅속 지렁이 소리, 햇빛에 달아오른 선인장 소리, 사과가 익어가는 소리, 깃털이 부딪치는 소리, 나무가 단단해지는 소리, 이가 썩어가는 소리, 거미가 거미줄 치는 소리, 거미줄에 날벌레가 걸리는 소리, 단풍이 물드는 소리, 연어가 산란하는 소리…. 훌쩍 자란 줄리아는 대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자연을 사랑하고 고독을 즐기며 작은 행복감을 잊지 않고 산단다. ‘자연결핍장애’를 경고하는 리처드 루브의 책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이런 고운 얘기들로 가득하다.

우리 아이들이 빗소리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 장화 뒤축으로 질컥이는 빗물소리. 악을 쓰고 고래고래 온갖 거짓된 목소리들 모두 물러가고 깨끗이 새롭게 씻기는 빗소리, 새 생명을 품어내는 착한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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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