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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광화문광장 블랙텐트에서는 두 개의 의미있는 공연이 있었다. 하나는 이윤택 연출의 연희단 거리패의 <씻금> 공연이고, 다른 하나는 정월 대보름맞이 <얼쑤, 탄핵하세!> 국악공연이다. ‘씻금’은 진도 씻김굿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극으로 진도 앞바다에 몸을 던진 망자들의 혼을 달래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천을 떠돌던 망자들이 각자의 원혼을 씻고 영원한 안식처로 떠나려 할 즈음, 저 멀리서 울부짖는 아이들의 통곡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장면은 세월호 어린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의 시간이기에 충분하다. 공연을 마치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하얀 천을 들고 배우와 관객들은 광화문광장으로 나아가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이 있는 곳으로 향하여 넋을 달랬다. 당초 원작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씻김의 예식은 광화문광장 블랙텐트였기에 더 깊은 공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주 토요일 퇴진행동 본부의 본 집회를 마치고, 저녁 8시부터 블랙텐트에서 있었던 <얼쑤, 탄핵하세!> 국악공연 역시 감동의 무대였다. 특히 공연의 맨 마지막 순서로 나온 ‘앙상블 시나위’의 격정적인 연주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국악공연을 선사했다. 알다시피 앙상블 시나위는 2015년 11월에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예정된 <소월산천> 공연을 한 문화 관료의 어처구니없는 검열로 인해 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소월산천> 공연에서 연극적인 요소가 극장 특성상 맞지 않아 삭제를 요청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소월산천> 공연을 함께 만들었던 박근형 연출가가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개구리>라는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앙상블 시나위는 블랙텐트에서 평소처럼 격정적으로 연주했고, 말미에는 이 팀의 검열에 분노하여 1인 시위를 벌인 안무가 정영두와 함께 즉흥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월 10일 광화문광장에 문을 연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이해성 극장장(극단 고래 대표)은 “정치권력에 빼앗긴 극장의 공공성을 광장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말했다. 권호욱 기자

이 모든 공연의 감동은 모순적이게도 블랙리스트 덕분이다. 광화문 캠핑촌에 블랙텐트라는 극장이 들어서고 나서 무대에 오를 수 없었던 공연들이 무대에 올려졌고, 모든 공연은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검열 사태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 세월호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연극, 그리고 우리 시대 재난의 아픔으로 각인시켜준 마임공연과 영화상영, 시낭송, 국악공연까지 블랙텐트는 검열로 빼앗긴 극장을 대신해서 예술인들의 정겨운 유배지이자 창작의 수용소가 되었다. 비록 시설은 열악하지만, 열정은 충만하다. 발은 시리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그럴듯한 대접은 못 받지만, 검열은 없다. 오직 예술가로서 자기 주권과 관객의 감동적인 환호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탄핵을 향한 촛불의 리듬은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를 뚫고 봄을 맞이하려 한다. 2월에는 탄핵되길 희망했지만, 국면상 3월 초를 기다려야 한다. 아니 그 이상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블랙텐트는 그날까지 광장에서 수많은 예술인과 관객들을 만날 것이다. 빼앗긴 극장에도 봄은 오는가? 아마도 올 것이다. 최소한 물리적으로 계절의 순환 원리에 따라 따스한 봄은 올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의미하는 ‘은유의 봄’도 올 것이다. 사악한 통치자는 탄핵당할 것이고, 감옥에 갈 것이며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위한 진상규명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야 한다. 

그런데 블랙텐트에는 정말 봄이 올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탄핵이 인용되면 블랙텐트는 아마도 사라질 것이다. 광화문 캠핑촌의 텐트와 각종 작품들과 시설도 서서히 정리될 것이다. 만일 기각되면 블랙텐트는 저항의 시간을 연장하며 존속될 것이다. 블랙텐트에 봄이 오려면 블랙텐트는 소멸되어야 한다. 빼앗긴 극장에 봄이 오면 우리는 다시 블랙텐트를 정리하고 본래의 극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최선의 길일까? 아니다. 빼앗긴 극장에도, 그래서 애써 만든 블랙텐트에도 진정 봄이 오려면, 광화문광장에 블랙텐트가 영구적으로 존치되었으면 한다. 블랙리스트의 참혹한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의 연기를 할 수 있도록 광화문 블랙텐트는 탄핵 이후에도 그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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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