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이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단계적 제재 완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구상은 문 대통령의 그간 발언들에 비해 반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실천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유엔 제재가 완화돼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당시 발언에 비해 이번 구상은 적절한 시기의 제재 완화가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데에 강조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 다르다.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파리 엘리제궁에서 정상회담을 연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미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를 조금만 진지하게 그려본다면 문 대통령의 구상이 결코 과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에 대해 철저하게 점수를 매기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입구’부터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정도로 비핵화가 진척된 단계에 이르러 ‘당근’을 주자는 구상에 이의를 달 이유는 없다.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문 대통령의 능동적인 판단을 지지한다.

문제는 대북 제재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여전히 완고하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앞두고도 대북 제재를 강력하게 고수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4일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에 깊이 전념하고 있으며 그때까지 제재 이행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북한 관련 제재 대상자 및 법인과 거래할 경우 세컨더리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은 대북 제재가 느슨해질 경우 비핵화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단선적인 사고다. 북한은 오랜 제재 속에서도 나름의 체제 내구성을 유지한 채 경제를 성장시켜왔다. 북한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견디지 못해 대화노선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것도 오산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오히려 제재를 유지하면 북한이 핵을 버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낮아질 것으로 본다. 이른바 ‘제재의 역설’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대해 본격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시기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비핵화의 수단에 불과한 대북 제재를 불변의 목표로 간주하는 듯한 ‘가치전도’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북·미 비핵화 협상 2라운드를 앞두고 제재 문제에서 현격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북한에 대해 중재안을 내놓은 셈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오는 19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구상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의 오랜 관성에 길들여진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공론화 작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북·미 협상의 촉진자를 자임한 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구상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검토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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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