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과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정식 재판이 23일 열렸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세 번째 전직 대통령 재판이다. 불과 2개월여 전만 해도 최고 권력자 신분이던 박 전 대통령은 503 수용번호를 달고 교도관에 이끌려 법정에 도착했다. 판사는 그를 ‘피고인’으로 부르며 직업을 물었고, 집게 머리핀으로 올림머리를 만든 초췌한 모습의 그는 “무직”이라고 답했다. 옆에 한 사람 건너 공범이자 40년 지기인 최순실씨가 앉아 있었지만 그는 인사도 주고받지 않았다. 수갑을 찬 전직 대통령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권력의 무상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잘못을 하면 누구나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 앞에 예외는 없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박 전 대통령의 죄상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주권자가 위임한 신성한 권력을 비선에 넘겨 나라를 어지럽혔다. 삼성 등 재벌·대기업으로부터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하는 등 대통령 권한을 사익 추구에 사용했다. 언론이 수없이 지적했음에도 사실을 호도하고 은폐하는 행위로 일관했다. 결국 국회는 지난해 12월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찬성 234명 반대 56명이라는 큰 표차로 통과시켰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10일 “피청구인(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며 재판관 8 대 0 전원일치 의견으로 그를 파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옷깃에 수용번호 ‘503번’을 달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 전 대통령의 갖은 방해에도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성과를 냈다. 특검은 “국가권력이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된 국정농단과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패고리인 정경유착”이라고 게이트를 규정했고,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막강한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였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3월31일 검찰이 청구한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혐의를 부인하고 사과 한마디 없으니 도대체 무슨 속인지 모르겠다. 이날 재판에서도 “(검찰의) 추론과 상상에 의해 기소됐다”고 억울함을 표시했다. 재벌의 뇌물을 받을 이유가 없고,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해서도 “보고받은 적이 없다”며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에 대한 사직 강요, 현대자동차나 포스코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도 모두 부인했다. 법정에서 무죄 주장을 펴는 것은 피고인의 자유다. 유죄판결 확정 때까지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원칙은 박 전 대통령에게도 적용된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이번 재판이 시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역사 앞에 참회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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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