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와 헌법 위반으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한 말은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는 29자가 전부였다. 일반 범법자들이 검찰에 책잡히지 않기 위해 하는 의례적인 상투어 그대로였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격과 책임에 맞지 않는 영혼 없는 발언이었다. 그는 지난 10일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반대 시위를 벌이다 숨진 박사모 회원과 유족들에게도 지금껏 위로의 말 한마디 없다. 전날 오후 그는 손범규 변호사를 통해 “검찰 출두에 즈음하여 입장을 밝힐 것이고, 준비한 메시지가 있다”고 했지만 이 역시 결국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이런 사람이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법 앞에 불려나온 4번째 전직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잠시 뒤를 돌아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히 답하고 검찰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와 함께 불소추특권을 상실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성실하게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는 말과는 달리 그는 모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책임을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에게 떠넘겼다. 검찰이 안 전 수석의 수첩 같은 범죄 증거를 들이댔지만 그는 지시한 적이 없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은 선의를 가지고 법 규정 테두리 안에서 한 일이며 재단 설립 비용은 재벌이 자발적으로 낸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현대자동차에 최씨 지인회사의 물건을 납품하게 한 것은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차원이라고 억지를 썼다.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한 푼도 받지 않았으며 모든 것은 최씨에게 속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강변했다. 불리하면 아예 입을 닫았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그의 범죄 증거는 차고 넘친다. 청와대가 범죄 모의의 온상이고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의 몸통이라는 사실은 박영수특검팀과 검찰 수사로 이미 확인됐고, 최씨를 비롯해 이미 수많은 공범들이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제 검찰과 법원이 법과 원칙대로 박 전 대통령을 처리하는 일만 남았다. 사과도 하지 않고 반성할 줄도 모르는 그에게 관용이란 있을 수 없다. 파면당한 그에게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해주는 것도 온당치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이 그의 조사과정을 녹화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검찰은 필요하면 그와 최씨, 그와 안 전 수석에 대한 대질신문도 해야 한다. 구속영장 청구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중형이 예상되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면 검찰은 그동안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해왔다. 검찰은 한 점 의혹 없이 박근혜 게이트의 진실을 밝혀 법과 정의에 성역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갈기갈기 찢긴 국론을 통합하고 혼란에 빠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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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