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관련해 기업 부담을 줄인다며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 검토 방침을 거론했다. 노동계가 격앙된 반응을 내놓자 입장을 번복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친기업 기조의 정부가 출범 때부터 이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운 데다 재계가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허약한 사회안전망을 감안할 때 해고 요건을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완화라니 절대 안될 말이다. 틈만 나면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몰고가는 행태도 지겹다.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정부와 기업의 자체 노력이 우선 필요한 것 아닌가.

정부의 해고 요건 완화 검토 방침은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사유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폭넓게 해석하려는 재계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 경영이 당장 어렵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재계 요구다. 기업의 부담 완화를 위해 ‘고용 재앙’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한국 노동자는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등 상시적인 감원의 피해자로 전락해왔다. 정리해고 사유만 해도 ‘기업의 존폐 위기에 직면하는 급박한 경영상 필요’로 좁게 해석하던 것에서 외환위기 때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크게 완화됐다. 이로 인해 고용 불안정성은 이미 오래전에 임계치에 도달한 상태다. 더구나 실업급여나 연금을 주조로 하는 사회안전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권이고 해고 후 재고용률도 낮다. 노동자는 처우 개선과 보호를 강화해야 하는 사회적 약자이다. 또한 기업과 함께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기둥이지 경제 발목을 잡는 훼방꾼이 아니다.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케이블방송 씨앤엠(C&M)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_ AP연합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정규직의 정리해고를 연계하려는 정부의 의도도 불순해 보인다. 정규직의 자원을 빼앗아 비정규직 처우 개선으로 기업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제로섬 게임 형태로 몰고가 갈등을 유발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근로자 소득을 키워 소비와 성장을 유도한다는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규직의 정리해고 요건 완화 방침을 거두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으로 소비 증대가 이뤄진다고 해도 정규직이 정리해고되면 소비와 성장을 유도할 동력원이 사라져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 아닌가. 아울러 기업의 고용 유연성 요구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노동분야에서 기업 편향성을 보이는 현실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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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