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 의혹이 불거졌다.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의 오래전 멘토였던 고 최태민 목사의 딸이자,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초기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씨의 전 부인이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 이외에 특별한 직책이랄 게 없는 최씨가 지난해 말부터 미르, K스포츠재단을 잇따라 설립, 순식간에 대기업들로부터 800억원이라는 출연금까지 모았다는 게 의혹의 줄거리다. 이 과정에 안종범 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개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야당들이 “제2의 일해재단(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활동을 위해 설립한 재단)이고 박근혜 재단”이라며 진상규명을 벼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청와대는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새누리당은 진상규명을 위한 관련자들의 증인채택에 반대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재단 설립과 운영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서울 강남구 논현동 K스포츠재단 출입구에 간판이 걸려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해 10월과 올 1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을 보면 권력형 비리의 냄새가 물씬 난다. 두 재단 모두 설립 신청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 문화체육관광부가 설립허가를 내준다. 평균 3주일 정도 걸리는 것에 비교하면 초고속이다.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재단 설립 시 제출하는 창립총회 회의록이 가짜라는 사실이다. K스포츠재단 창립총회에서 임시의장을 맡은 것으로 돼 있는 정모씨는 당시 해외에 있었다. 누군가 이 일을 기획하고, 정부를 움직여 일사천리로 허가해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 재단에 출연금이 모이는 과정도 의문투성이다. 삼성, SK, 현대차 등 국내 10대 대기업을 포함, 19개 기업이 두 재단에 8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출연했고 이를 주도한 곳은 전경련이다. 극우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에 활동비를 댄 것과 똑같은 행태이다. 고용창출을 하라고 해도 좀처럼 돈을 내놓지 않는 재벌이 8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자발적으로 출연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안종범 수석이 재단 모금 과정에 개입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대통령의 지인인 최씨가 아는 사람들을 내세워 재단을 설립하고, 권력이 뒤에서 밀어줬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 대통령의 브로치와 목걸이 등도 최씨가 청담동에서 구입해 전달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우병우 민정수석의 발탁이나 헬스 트레이너 출신인 윤전추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도 최씨와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래전에 끝났다는 대통령과 최씨와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볼만한 정황이 있다. 지난 6월 박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 중 한·불 융합요리 행사에 미르재단이 참여하는 등 여러 행사에 두 재단이 참여했다. 신생 재단이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부인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는 임기 말 권력 누수를 걱정하는 듯한데 이런 사건을 의혹으로 남기는 것이야말로 레임덕을 자초하는 일이다. 새누리당이 최씨와 안 수석, 전경련 관계자를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야당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도 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번 사건은 권력자 주변 인물이 재단이나 단체를 만들어 이권을 챙기는 낯익은 수법을 연상케 한다. 당사자들이 떳떳하다면 스스로 해명하고 의혹을 벗을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의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의 수사로 밝힐 수밖에 없다. 결코 그냥 넘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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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