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둥 내 낭군 어허 둥둥 내 낭군, 도련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자가 절로 나, 부용 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이 좋을씨구.” 춘향전 사랑가의 한 대목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아마 요샛말로 원예종일 것이다. 야생의 짐승을 가축화하듯 화단의 식물로 바꿔놓은 것들이다. 나중에는 베갯머리나 이불의 무늬로 들어앉아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싸움을 지켜보았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뜰 안의 손바닥만 한 정원으로 불러들인 작약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하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으니 멀리 자연에서만 친견할 수 있는 종류도 있다. 참작약, 백작약 그리고 산작약. 이 중에서 산작약은 무척 귀한 꽃이다.

ⓒ이해복

 

꽃을 두고 우열을 가리는 게 참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산중을 헤매는 동안 고만고만한 것을 보다가 홀연 큼지막하게 우뚝 서 있는 꽃 앞에서 눈이 번쩍 휘둥그레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흰 꽃잎에 노오란 기관이 오밀조밀하게 밀집한 백작약. 깔끔하고 기품 있다.

갑자기 훅 더워졌다. 작열하는 태양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날씨다. 영월의 어느 야트막한 산의 계곡을 줄창 헤매고 다녔다. 사전정보를 갖고 찾아간 산작약은 누군가 연약한 꽃대를 댕강 분질러놓았다. 시대를 격하여 나타난 변사또 같은 놈이 저지른 소행인 듯했다. 씁쓸한 기분을 달랠 겸 더욱 헤매다가 뜻밖의 산작약을 만났다. 백작약은 여러 번 보았지만 산작약은 처음이다. 꽃에게는 나보다 먼저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어느 큼지막한 애벌레가 푹신한 수술과 암술에 파묻혀 꽃잎에 주둥이를 대고 있다. 나 따위는 도저히 침범하지 못할 자연끼리의 접촉, 그들만의 사랑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산작약은 무리지어 있지 않다. 홀로 한 송이만 있어도 주위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원줄기에서 뻗어나간 잎줄기에 3장의 잎이 달린다. 껑충한 대궁 끝에 강렬하기 이를 데 없는 오직 하나의 꽃을 올려두는 산작약. 보물을 두고 오는 것 같아서 자꾸 뒤돌아보면, 빛과 그늘을 하나로 묶으면서 그윽하게 서 있는 산작약. 여러 장의 잎을 그러모은 뒤 하나의 고고한 꽃으로 통일(統一)시키는 듯한 산작약!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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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