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풍광의 제주. 이런 풍경에 어울리게 특이한 이름도 많다. 우리 국토가 한반도에서 내처 제주도로 훌쩍 뛰었기에 우리 어휘도 그만큼 풍성해졌다. 제주를 대표하는 오름의 이름 몇 개를 중얼거려 본다. 입안이 복잡해진다.         

한라산이 키운 흑돼지 오겹살과는 또 다른 차원의 쫄깃한 맛이다. 성산읍의 한 오름은 허리 부분이 활 모양의 띠가 둘러져 있기에 궁대악(弓帶岳)이다. 궁대악, 궁대악, 궁대악. 과녁에 꽂힌 화살처럼 말맛이 입술을 때리고 지나갔다.

초파일 뒤였다. 날이 날이니만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며 궁대악 오름에 올랐다. 인적 드문 오름의 비탈에는 몇 년 치의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고 아주아주 건조했다. 바짝 마른 오름은 그간의 적폐를 털어내듯 낙엽을 밟을 때마다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었다. 눈은 눈대로, 발은 발대로 포식을 하면서 정상의 호젓한 오솔길에 도착했다.

따가운 햇살을 받아 소나무가 그림자로 내려앉고 그 사이로 내 그림자도 나란히 누웠다. 문득 이 고요한 숲에서 그림자들끼리는 뭔가 내통하지 않을까, 하는 궁리가 일어났다. 이 세상의 배후는 어딜까, 하는 궁금증도 솟아났다. 층층의 낙엽 사이를 휘저으며 부지런히 오가는 수행자들이 있다. 포행이라도 하는가. 탁발이라도 나가는가. 검은 가사장삼을 걸친 날씬한 개미들!

특이한 지형과 특이한 이름에 걸맞게 궁대악 사면 곳곳에 새우난초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름진 타원형의 잎 사이로 훤칠하게 뻗어오른 꽃줄기마다 오밀조밀한 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두꺼운 흙을 뚫고 어찌 이리도 곱게 올라왔는가. 땅속의 뿌리줄기가 구부린 새우등을 닮아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 새우난초. 너무나 풍성해서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코끝을 대보지만 이렇다 할 향기는 풍기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살갗을 건들고, 햇살이 찾아와 목덜미를 간지럽히고, 새소리가 둥지처럼 귓구멍을 찾아드는 것. 이는 살아 있기에 누리는 잠시 잠깐의 복락인가. 어느 울적한 야단법석(野壇法席)에 그 누가 꾸며놓은 새우난초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새우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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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