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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생각 하나를 줍기 위하여 모처럼 인왕산에 올랐다. 바위투성이의 암산이다. 가까운 곳의 낮은 산이라지만 갖출 건 다 갖추었다. 호젓한 오솔길, 아찔하게 돌아가는 벼랑길이 있는가 하면,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하는 깔딱고개도 있다. 추락하면 목숨을 가져가는 높이도 입을 벌리고 있다. 인왕산 정상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다섯 개의 홈을 파놓았다. 두 개의 눈, 코, 입 그리고 보조개로 각각 대응시킬 수도 있어 멀리서 보면 꼭 해골 같다. 이처럼 인왕산이 꼭대기에 해골을 얹어놓은 것은 헥헥거리며 정상에 오르는 나 또한 어깨 위에 그것을 달고 있으니 어쩌면 둘은 닮은 구조라 하겠다. 오늘 인왕산 정상에서 유념하는 건 해골바위가 아니라 바위에 거처를 두고 자라는 소나무였다. 척박한 환경이라 우람하지는 않지만 지친 등산객 하나를 품기에는 넉넉한 소나무. 나무 밑에 앉으니 광화문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간밤의 함성이 실린 듯 귓전에서 쟁쟁하였다. 발밑으로 환히 펼쳐지는 서울특별시. 인왕산 소나무에 연결되어 멀리 빌딩숲에서도 헌법재판소의 앞마당에 있다는 백송(白松)으로 시선이 달려가 꽂히는 건 최근 마음이 쏠리는 바를 좇음이었다.

몇 해 전 궁리출판에서 펴낸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는 1988년 이후 대한민국이 어떻게 아파하고 고민하며 오늘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대통령 탄핵을 다룬 뒷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재동 헌법재판소의 백송 오른편에 산책로가 있다. 재판관들은 점심을 함께 먹은 뒤 모두 이곳을 산책한다. 뒷짐을 지고 무언가 담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재판관들이 대놓고 심판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만, 내심을 담아 치열하게 설득을 벌이고 있을 테다. 이런 이야기를 20년 가까이 보고 들은 목격자가 바로 천연기념물 8호 재동 백송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것처럼 우리 살아가는 모습은 하늘에 다 녹화될 것이다. 소나무 아래 이슥하도록 머물렀지만 생각을 줍지는 못했다. 며칠 후 수령 600년의 목격자 백송은 그 어떤 경건한 소식을 전해주실까. 강원도에서 굽이굽이 흘러와 결국 바다를 찾아가는 한강을 보면서 집으로 내려왔다. 소나무, 소나무과의 상록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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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