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방서를 보면 여러 소방대원 중에서도 유독 바쁜 사람이 있다. 소방대원들이 출근하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람, 그가 바로 보건안전담당관(Health and Safety Officer)이다.

미국 소방서의 보건안전담당관들은 한 해에 백여명에 가까운 소방대원의 순직과 6만여명이 넘는 소방대원들의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그들의 보호자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보건안전담당관의 업무는 그 한계가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직원들에게 보건 및 안전에 관한 사항을 수시로 교육해야 하며,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새로운 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현장에서 소방대원의 개인적 일탈이나 게으름에 기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엄한 징계로 다스리기도 한다.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소방서 내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방서 청사 시설점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업데이트, 방열복, 화학복 등의 내구연수 추적관리, 개인보호장구 상태 점검, 공기호흡기 점검관리, 소방대원 체력관리 프로그램 운영, 직원들에 대한 질병 및 전염병관리 프로그램도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미국의 각 소방서에서는 보건안전담당관이 주축이 되어 운영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Committee)라는 것이 있다. 위원회는 통상적으로 6개월마다 개최하지만 특별한 사안이 있는 경우에는 추가로 모이기도 한다. 이 위원회에는 다양한 경력과 계급의 소방대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위원회에서는 소방대원을 위한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현안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그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한다.

이 위원회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 것은 일선 소방대원들의 애로사항이 여과 없이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고, 여기서 나온 결과는 소방서장이 한 해 동안 소방서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 건 _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보건안전담당관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동안의 교육과 자격증 취득이 필수다. 보건안전담당관은 미국방화협회(NFPA) 1521 기준에 근거해서 필기시험과 실기평가를 거쳐 최종 합격한 사람만이 정상적으로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렇게 업무가 막중하다보니 보건안전담당관은 통상적으로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가급적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들이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민국 소방관들이 국민의 안전을 위해 매일 현장을 누비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보건과 안전을 챙기는 데에는 소홀한 점이 많았다. 물론 소방관들의 안전과 건강을 적극적으로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소방공무원 보건안전관리 규정>이라는 것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예산과 인원을 이유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앙정부에서는 지자체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도 않은 채 그냥 정책을 만들어서 툭 던지듯이 배포하고는 이에 따르라고 요구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일선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메르스(MERS) 사태에서만 보더라도 초기에 주무부처에서 정확한 정보와 대응방법을 일선 소방서에 충분히 전파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설령 메르스 환자이송 등에 따른 세부사항이 미리 전파되었다고 하더라도 각 소방서별로 보건안전담당관들의 지휘아래 일사분란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지에 관해서는 미지수다.

그런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메르스 의심 환자들을 이송하는 119 구급대원들에게 마스크와 보호복 등 감염에 대비한 보호 장비가 제때 지급되지 않아서 구급대원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환자를 이송했는가 하면, 일부 구급대원은 자가격리 되는 등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민국은 외형만 보면 대단히 훌륭한 스펙을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런 모습에 아낌없는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메르스 재앙 등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화려함 속에 그늘진 허술함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되새겨본다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중앙소방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건안전관리담당관 과정>은 고작 3일간의 교육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직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교육은 모두해서 14시간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것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으로, 3일간의 교육을 받아 보건안전관리담당관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다. 설령 해당 담당자가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조만간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이 나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소방관이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라고 외쳐오고 있다. 소방관이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그들이 보다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근무여건과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앞으로 내실 있는 보건안전관리담당관 제도를 마련하고, 필요하다면 자격제도도 도입해서 전문성을 보유한 사람들이 업무연속성을 가지고 소방대원들의 보건과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전반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