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열한 시에 나는 소리들을 흡수하였다.

오전 열한 시에 나는 가능한 한 시끄러웠다.

창문을 열고 수많은 목소리가 되었다.

나는 음속으로 변형되었다.

네 안에 들어가서

삼십 초 동안의 기억이 되었다.

비 내리는 어머니의

썩어 가는 몸을 흘러갔다.

나는 소문이 흩어지는

무한한 형태가 되었다.

침묵하는

허무주의자들을 혐오하였다.

육식동물의

더러운 식욕이 되었다.

혈관 속을 지나가는 피와 피의

현란한 각도,

아이들이 자라는 소리,

우유가 상해가는 소리,

나는 무성영화 속의 주인공이

가장 크게 벌린 입이 되었다.

오전 열한 시에 귀를 막았다.

오전 열한 시에 눈을 닫았다.

나는 완벽하게 침묵하였다.

 - 이장욱(1968~ )

백색 소음. 늘 들리지만 들리는지 모르는 소음. 안 들리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고막을 울리고 몸에 흡수되는 소음. 그렇게 세상은 내 몸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타인은 내 몸과 섞인다. 그토록 증오하고 싫어하고 욕했던 이들은 내 몸에 들어와 내가 된다.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자라 아버지를 증오하던 아이는 그렇게 폭력적인 아버지가 된다. 내 몸은 내가 아니라 세상이 집약된 일인칭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말은 나의 말이 아니라 세상의 말이 된다. 내가 쓴 글은 이 세상이 내 몸과 입을 빌려서 한 말이 된다. 내 안으로 들어온 세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으로 들어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함부로 지껄인다. 내 목청은 하나지만 그 목소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아이들이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우유가 상해가는 소리를 들으며, 입과 귀를 닫고 침묵한다. 어차피 세상은 내가 듣든 말든 말하든 말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맘대로 내뱉을 테니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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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