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학자 조재삼이 편찬한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느 양반집 부인이 워낙 바느질 솜씨가 없어 남편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버선 한 켤레를 지어주었다. 남편이 이것을 신고 조정에 들어가자 동료들이 볼품없는 버선이라 놀렸고, 이에 내 나이 마흔에 아내가 처음 지어준 버선이라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한다. 조재삼은 이것이 속담 ‘갓 마흔에 첫 버선’의 유래라고 수집해 넣고 있습니다. 아마도 속담에 맞춰 지어낸 이야기 같습니다.

오래 기다리던 일을 마침내 이룸, 또는 나이가 꽤 들어서야 처음 해보는 것을 이르는 속담 ‘갓 마흔에 첫 버선’을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옛날에 가난한 사람들은 늘 맨발에 짚신이었습니다. 심지어 아기의 체온 보호를 위해 신기는 타래버선조차 신어본 적 없었지요. 그러니 버선을 처음 신어볼 수 있는 건 혼례 치르려 사모관대로 성장(盛裝)했을 때입니다. 즉 사십 먹고서야 혼례를 간신히 올릴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밤마다 홀로 뒤척이던 열뜬 몸부림과 단란한 가정의 꿈을 마흔에야 겨우 이루니 눈물 없인 못 치를 혼례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결혼은 물 한 그릇 떠놓고 못합니다. 예식 비용에 하객 대접, 주택에 생계와 양육 조건까지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석사학위에 외국어 능통자를 월 150만원으로 구인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입니다. 쥐꼬리만도 못한 월급으로 입에 풀칠로 살면서 모으면 얼마나 모으겠습니까. 그러니 청춘을 맨발로 다 보내고 마흔 목전에 이르러 빚내서 결혼할 수밖에요. 그래서 오늘날 젊은이들을 ‘삼포세대’라 합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산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포기가 아니라 사실상 절망입니다. 그럼에도 이기적이라 욕을 먹습니다. 우리 땐 없이도 결혼해 애만 잘 키웠다 합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옛날 얘기만 합니다. 억울한 비난에 젊은이들은 울분으로 답합니다. “아프니까 청춘? 우린 아프리카 청춘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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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