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자료 번역을 부탁해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줄 거냐 하니 ‘우리 사이에’라며 얼버무리더군요. 그리고 또 얼마 전 다른 친구가 교재 편집을 부탁하며 얼마면 되겠냐고 해서 ‘친구끼리!’로 일축하고 그냥 해준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같은 친구 사이에 이런 온도차가 나는 걸까요. 당연히 한 친구는 자기 필요할 때만 나타났고 다른 친구는 안부도 물어주며 여러모로 제게 마음과 힘을 써주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공짜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빈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많이 씁니다. 빌 공(空) 자(字)의 발음이 ‘공짜’기 때문에 머리숱도 빈다고 놀리는 것이지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는 사람도 정작 자기 필요할 때는 ‘우리 사이에’를 내세웁니다. 하지만 앞서의 온도차에서 보듯, 거저 얻은 게 사실 알고 보면 그간 자신이 베푼 것들에 대한 신세 갚음에 다름 아닙니다.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거나 환장하고 덤비는 사람에게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짜 바라기는 무당의 서방’이라고. 무당의 서방이라서 공짜로 얻길 바라느냐는 말입니다. 옛날에 무당은 백정, 광대 등과 더불어 여덟 천민 중 하나였고 신(神)을 받기 위해 몇 달씩 금욕하고 입산하기도 해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무악(巫樂)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백수건달을 사내로 방패 삼아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서방들은 무당이 번 돈으로 빈둥거리며 살았다죠.

자기 위치나 거절 못할 인정을 이용해 재능기부를 강요하거나 ‘우리가 남이냐’며 허투루 얻으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발적인 공짜는 기부지만 요구하면 갈취입니다. 공짜 좋아하다간 삼켰더니 양잿물이라 밥통까지 토해내야 하거나, 제 자리가 빈자리 될 수도 있습니다. 공(空)자 뒤엔 실(實)이 아닌 허(虛)가 오는 법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