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다 다른 글을 고민하며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 2002년이었을 것이다. 노동자 생활글쓰기 운동을 꿈꾸며 잡지 ‘삶이 보이는 창’을 만들 때였다. 구체적인 사람들의 현실은 달라진 게 없는데 이런 현재를 어떻게 다시 문학, 글쓰기 자장 안으로 끌어들일까, 생각했던 것이 ‘르포’와 ‘여성 노동자 글쓰기’ 운동이었다.

시·소설 창작교실은 안 하고 당시엔 아예 존재하지 않던 말, ‘르포 교실’과 생경한 ‘여성 노동자 글쓰기’ 교실을 한다고 동료 문학인들이 마뜩잖아 했지만 한국 사회엔 다시 ‘르포’와 ‘여성 노동자’이야기가 필요해라는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렇게 만났던 이들에 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야기를 다룬 <부서진 미래>와 영화 <카트>의 원본인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용산 철거민들 이야기를 다룬 <여기 사람이 있다> 등 소중한 작업들이 이어져 왔다.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밀양을 살다>에도 그때 마음 모았던 이들이 함께하고 있는 것을 본다.

세월호 시민기록위원회가 지난 10개월 동안 유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_출처 : 창비


훌쩍 13년여 세월이 흘러 내 앞에 한 권의 책이 놓여 있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 노동자 글쓰기 모임’이 펴낸이로 되어 있다. 안미선, 희정, 류현영, 이지홍…. 반가운 이름들이 많다. 모임 이름 하나 없이,

이 책은 서른한 명의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들의 삶의 기록을 담았다. 야쿠르트 판매원, 행사도우미, 피트니스센터의 운동강사, 톨게이트 계산원, 급식조리원, 여성 대리기사, 산모도우미, 돌봄교실 교사, 비정규 보육교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장애여성노동자, 미혼모,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이중 삼중 차별을 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비로소’ 입을 열고 자신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 이런 것이었구나, 꼭 기억해야지 하고 밑줄치고 접어둔 곳이 책장의 절반을 넘는다. 문학 하면 고도의 미학 어쩌고 하는 어려운 말이 늘 따라붙어 평범한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데, 이들의 말처럼 생생한 문학이, 미학이 또 어디 있을까.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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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