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점 없는 길이 뜨겁다. 젓갈처럼 온몸이 땀에 절여진다. 그러나 이 길을 멈출 수는 없다. 제주도 강정 평화대행진. 동진과 서진으로 나눠 제주도를 한 바퀴 걸어 제주시에서 만나는 5박6일 긴 여정의 첫날. 전국에서 700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어떤 이들은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하기도 했다. 공사가 강행돼 올해 2월엔 준공식까지 가졌기 때문이다. 2005년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된 지 11년째. 제주는 다시 동아시아 전쟁 전진기지로 나아가는 첫발을 떼었다. 막아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로 모여들기도 했다. 아예 주소지를 옮겨 강정 주민이 된 지킴이들도 있었다. 2007년 강정마을 주민들 1900명 중 단 87명이 참석한 무늬만 마을총회에서 불법적으로 통과시킨 일이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 725명이 참가한 주민투표 결과 94%의 반대가 있었지만 정부는 물러나지 않았다. ‘민관복합형 관광미항’이라 속였지만 2012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주한 미 해군사령관이 요구한 조건대로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한때는 야 5당이 나서서 부대조건 미준수, 생태계 훼손, 심각한 절차적 하자 등을 이유로 공사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2012년엔 국회에서 해군기지 건설 예산 96%를 삭감하며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해군은 이런 국회의 요구까지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해 결국 무력으로 해군기지를 완공시켰다. 이 과정에 700명의 주민과 연대하는 시민들이 연행되었고, 그중 600여명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중 56명은 구속당해야 하기도 했다. 그간 4억여원의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해군기지가 완공되고도 반대 운동이 사그라지지 않자 공사지연 배상금 명목으로 주민 등 121명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탄압을 멈추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이런 무법에 의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기지가 다시 4·3의 아픔을 안고 있는 제주에 들어섰다. 비록 공사 강행을 막지 못했지만, 평화를 향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들을 모으는 자리다. 천년 구럼비바위 위에 건설된 저 무자비한 전쟁기지를 걷어내고 이 바다에 다시 평화가 깃들 때까지 우리 함께 행진해 나가야 한다는 다짐들을 모으는 자리다. 강정만 싸우는 게 아니라, 미군기지가 들어선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전쟁의 위협이 있는 모든 곳에서 오늘도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 자리다.

첫날 숙소인 체육관 스티로폼 위에 누워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데, 충남 아산에 있는 갑을오토텍 공장 안에서 다급한 전화들이 온다. 특전사 출신의 용역깡패들이 진입 준비 중이라고 언론에 알려달라 한다. 얼마 전 사장이 부당노동행위로 법정구속까지 되었는데, 도리어 직장폐쇄에 용역깡패 투입이라니 도대체 법이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분노스럽고 한심하다. 다행히 그곳에도 황금의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연대하러 온 수백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남들 같은 여름휴가를 가 본 지가 언제였는지,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인생의 휴가가 또 어디 있을지.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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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