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빨랫줄 참 길게 눈부시다

태양을 널었다가

구름을 널었다가

오징어 떼를 널었다가

달밤이면 은빛으로 날아다니는 갈치 떼를 널었다가

옛날에는 귀신고래도 너끈하게 널었다는

그래도 아직 단 한 번 터진 적 없는

저 빨랫줄

한라산과 백두산이

가운데쯤 독도를 바지랑대로 세워놓고

이쪽, 저쪽에서 팽팽하게 당겨주는

참 길게 눈부신

저, 한국의 쪽빛 빨랫줄

 -배한봉(1962~)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수평선으로 빨랫줄 한 번 잘 만들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던 빨랫줄에 옷을 널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춤추며 잘도 말랐지. 그 줄이 한라산에서 독도 지나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한여름 햇빛을 받아 반짝이면서도 한 번도 탈색된 적이 없는 싱싱한 쪽빛 수평선을 떠올려본다. 그 반듯한 줄에 구름도 널고 일출과 노을도 너는 공상도 해본다.

수평선은 움직임 없는 한 줄 고요한 직선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쉬지 않고 수면을 들이받으며 출렁이고 뒤채는 격렬한 물결이다. 소리 지르고 포효하고 바위를 때려 제 몸을 부수는 파도이다. 그 티 없이 반듯한 직선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마음을 널면 눅눅한 기분이 때와 함께 날아가 자꾸 만지고 싶어지도록 뽀송뽀송해지겠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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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