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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명이 연이어 나온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필자에게 96%의 여론이 잘못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4%를 우연히 만난 경험을 이야기했다. 마치 아주 신기한 무엇을 만난 것처럼 소수의 고집스러움을 조롱하듯 이야기했다.

 

비슷한 이야기들은 지난 두 달여간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여론이 96%에 달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나머지 4%의 고집스러운 단단함을 조롱하고 우리가 압도적 다수라는 자신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일화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압도적인 여론과 수백만명의 뜨거운 촛불로 나타난 시민들의 위대한 참여와 저항의 경이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 여론의 지지만으로 스스로의 옳음을 과도하게 확신하거나, 소수 여론을 조롱하는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들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그 자체로 우리의 정당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의 정당성, 그리고 박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하야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정당성은 96%라는 여론조사 결과보다는 세월호 7시간의 문제, 지금까지 드러난 재벌과 정권이 결탁한 수많은 민주주의 파괴행위 등에 근거한다.

 

여론조사 결과는 현시점에서 우리의 주장과 의견이 얼마만큼 다수의 지지를 받는가를 확인해주는 참고자료일 뿐이다. 주제가 달라지면 언제든지 다른 숫자로 변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박 대통령은 60%에 가까운 지지를 등에 업은 지도자였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수많은 정책들이 정당한 것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이제 너무 잘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진보정당의 당원인 필자도 각종 선거 때가 되면 5%인 소수 여론의 입장에 서게 된다. 소수 여론에 서 있다고 해서 필자를 비롯한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주장과 생각이 어리석거나 고집스러운 무엇이 되지는 않는다. 한 사회가 더 발전하고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다양한 정치적 의견의 일부로 인정받기를 희망하는 우리의 소수 여론이 조롱받을 무엇이 되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회갈등의 당사자들은 언제라도 4%의 고집스러운 소수의 위치에 서는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때로 그것은 노동자나 다양한 경제적 약자들의 권리에 대한 외침일 수도 있고, 더 평등한 사회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곰곰이 역사를 돌아보면 공동체의 평등과 진보를 희망하던 목소리의 대부분은 4% 미만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4%는 후일 위대한 첫걸음이 된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는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인류가 발명해낸 유용한 껍데기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대선후보에게 영감을 준 미국의 사회운동가 사울 D 알린스키는 저서 <급진주의자여 일어나라>(생각의힘)에서 ‘민주주의는 일종의 생활양식이지 젤리처럼 보존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그리고 ‘반대파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이의를 제기하고 숙고하지 않는 인생에 대한 소크라테스 금언의 참가치를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진보를 향한 끊임없는 저항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촛불로 지켜낸 민주주의라는 생활양식과 정치체제의 안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논쟁을 통해 결정된다. 지금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96%라는 여론조사 결과의 의미는 시민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어떤 형식과 절차일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 형식과 절차의 내부를 채울 새로운 내용들을 결정하는 정치적 의견의 경쟁의 장에서 우리는 4%짜리 의견들에 더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마치 지난 몇 달간 각자의 촛불의 크기와 색깔이 모두 달랐던 것처럼.

 

시민들은 곧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각각의 대선주자 지지율에 따라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의 여론지형을 새롭게 체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감히 분열이라 말하지 말자. 상대를 소수라고 비난하고 조롱하거나,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조금 더 다수라고 과도하게 자신하지 말자.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언제든 우리가 공동체 내 여론의 소수일 수 있음을 깨닫고, 그럼에도 공동체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가치들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열린 광장의 시민이 되기를 희망하자.

 

조성주 정치발전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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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