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34일간이나 지속된 촛불은 시민들에게 ‘희망’과 ‘기대감’이라는 두 단어를 선물한 듯하다. 평소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자주 언급했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촛불의 힘은 그렇게 강했다. 실제로 변화의 목소리는 이전과 매우 다르다. 갑갑함과 억눌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단순 욕망의 분출이 아니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과 대안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요구하고 있다. 5월9일 이후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시민들은 그 답을 얻고자 할 것이다.

기대감이 높은 유권자들에게 기존 정당과 유력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장밋빛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과 일자리 분야별 공약을 훑어보아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심지어 노동자 보호, 비정규직 감축, 법정노동시간 보장 등은 특정 후보를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다. 문제는 노동기본권이나 노동조합과 같은 정책과 달리 최저임금은 차이가 없다. 현재 각 대선 후보들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제시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정당 후보간 차이가 없는 몇 안 되는 정책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에 어떤 임금이 필요한가에서, 무엇을 위한 임금인가?”로의 변화를 위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렇다면 먼저 법정최저임금 6470원은 과연 ‘괜찮은’ 혹은 ‘적정한’ 임금일까. 2016년 5월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76.2%나 되는 시민들은 최저임금이 낮다고 응답했다. 예상 밖의 결과였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이해가 된다. 미국은 2020년까지 15달러(1만7000원)로, 영국은 9파운드(1만5000원)로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독일은 2017년 8.8유로의 최저임금을 발표했다. 그간 최저임금 1만원이 시민사회단체의 요구였고, 2018년 최저임금 결정은 이제 차기 정부의 몫이 되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중요 제도 중 하나다. 최저임금은 단순히 임금 노동시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파급 범위는 우리 사회 경제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최저임금과 연동된 법률은 실업급여와 출산 및 장애인 그리고 산재보상, 특별재난지역 지원금 등 무려 16개 법안, 31개 정책과 사업에 달한다. 최근에는 지자체 생활임금 결정에도 기준이 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제도임에도 그 파급력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도 1933년 미국의 법정최저임금제도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8년 시행 당시의 최저임금 취지와 내용이 현실 사회에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비정규직 비율이 취업자의 절반에 가깝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저임금 계층이나 임금 불평등이 미국 수준으로 심각한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보다는 많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3분의 1이 겨우 시급 7000원 이하를 받고 있는 나라. 10명 중 2명은 몇 년째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나라. 이게 정상적인 나라일까. 사실 1948년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 항목에도 ‘생활을 할 수 있는 공정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최저임금 인상이나 개선 논의들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을 향유할 수 있는 정도의 적정한 임금으로, 혹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 논의 기준과 방식 등이 개편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개선 목소리는 일의 성격이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임금에서 벗어나자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지명하는 공익위원 선정 방식도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선출 방식과 유사하게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최저임금 하면 떠오르는 단상은 아르바이트라는 모호한 직업군이다. 사실 아르바이트는 좋은 일자리라기보다 법을 위반해도 괜찮다는 의미로 더 다가온다. 2015년 조사 결과 청소년 다수 고용 아르바이트 사업체에서 16.2%가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또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곳이 42.1%나 되었고, 이런 곳일수록 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꺾기’와 같은 꼼수도 있다. 저임금도 서러운데 어떤 곳은 각종 유니폼이나 비품을 자비로 구입하도록 한다. 게다가 일을 그만둘 때 다른 사람을 구하기 전까지 일을 계속하라며 임금을 미지급하는 방식으로 퇴사조차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업체와 같은 곳은 고온의 기름에 감자를 튀기고 뜨겁게 달궈진 그릴에서 패티를 굽는 과정에 화상과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위험은 매장 밖에도 도사리고 있다. ‘라이더’로 불리는 오토바이 배달은 매년 10.6명의 청소년의 삶을 앗아간다. 패스트푸드 배달사고는 도달률에 따라 매장의 평가점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에 목숨을 담보로 한 배달을 강제한다. 죽음을 담보로 한 ‘배달 수당’ 몇백원 때문에 10대 청소년들이 배달 알바를 찾는다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그런데 지난 2016년 11월 맥도날드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불안정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대변하는 알바노조 분회 형태다. 당시 알바노조는 한국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맥잡(Mc job)을 굿잡(Good job)으로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면서 “맥도날드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일자리를 안전한 일자리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피자 배달 30분제,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미지급 문제, 열정페이 등 우리 사회 주요 청년 노동현실을 개선한 청년유니온과 함께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동조합’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고 불편하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제33조)에서도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로 노동3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비인간적인 작업조건 개선과 사회 변화의 주체이기도 하다.

어쩌면 차기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과 아르바이트 문제 그리고 노동기본권 향상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촛불의 답을 찾고자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바로 ‘상품’이 아닌 노동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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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