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건만, 오히려 법관이 판결로 말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으로 말미암아 비판대에 올라서이다. 관련자 검찰수사 여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 자리에선 작금의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된 권한과 사법관료주의, 그리고 이와 맞물린 법관인사 특히 대법관 인사가 문제이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대법원장이 제청한 자를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으로 임명한다. 대법원장의 독단적 제청권 행사를 제한하고자 법원조직법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규칙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두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는 대법원장에게 후보자를 비공개 천거하면, 대법원장은 명백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을 추천위에 제시한다. 추천위는 적격 여부를 심사한 후 3배수 이상을 대법원장에게 추천하고, 대법원장은 그중 1인을 제청한다.

5월29일자 개정규칙은 대법원장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자를 독자적으로 추천위에 제시하도록 한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대법원장의 권한을 일부 축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법원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위원 10명 중 3명만 변호사 자격이 없는 각계 전문가이고, 나머지 위원은 법조인과 법학교수이다. 위원의 구성 면면이나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하고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감안했을 때, 대법원장이 원하는 자를 최종적으로 후보자로 제청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대법원장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권력은 비대해진다.

대법원 판결이 국민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막대한 파급력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대법관 인사를 1인 내지 소수가 좌지우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판사들이 판결보다는 대법원장의 의중과 동향에 더 신경을 쓰기 쉽고, 재판을 하는 것보다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며 사법부의 고위직들과 연줄을 맺는 걸 선호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형식적인 권한에 머물 때, 대법관의 위상도 더욱 올라가고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이 확고하게 보장된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대법원장의 권한을 견제하기 어렵다. 문호를 개방하자. 천거를 받을 것이 아니라, 대법관의 자격을 가진 자라면 자유롭게 공모할 수 있어야 한다.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자. 10인의 위원을 포섭하는 것은 비교적 쉬울 수 있다. 위원회의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위원회에 비법조인과 무작위 추첨된 일반인의 참여를 늘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심사를 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는 판사의 일생을 판결로 평가해야 한다. 출신학교, 출생지역, 사법시험 성적, 사법연수원 등수, 도덕성 등도 대법관 추천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보다는 판사 재직 동안 행했던 수많은 판결로 법관을 판단해야 한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하지만, 각양각색의 판결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득권을 위한 판결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 단순히 튀기 위한 판결과 사회변화와 현상을 잘 담아내는 판결, 고루한 판결과 시대를 선도하는 판결. 전문가와 일반인이 후보자들의 판결들을 면밀하게 평가하고 대법관 후보자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치열하게 거쳐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특정 정치세력이 제도를 악용하여 대법관을 독식하려고 할 것이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세 차례의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한쪽에 치우친 대법관들이 득세할 것이란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 오히려 자유로운 공모방식과 일반인이 심사에 참여하는 후보자 추천방식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대법관을 만들어갈 것이다. 대중영합적인 판결이 늘어날 것이란 걱정도 있을 수 있다. 하나 대법관은 튀는 판결로 인기몰이를 했다고 해서 쉽게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위원회에 전문가집단의 심사가 중요한 과정이므로 집단지성이 작동할 것이다.

법원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다. 게임의 규칙이 변하기 때문이다. 대법관 중 일정 수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도입하고,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대상자를 확대해가는 방식도 고려해 봄직하다.

법관은 판결로 말해야 한다. 법정 내에서 판결이 권위를 갖는 것을 넘어서 판사의 일생이 판결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래야 법관은 판결에 더욱 심사숙고할 테고, 진정한 의미에서 법관이 판결로 말하는 것이 된다.

<김정현 전북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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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