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나라 시인들은 촛불을 들고 길거리에 자주 서 있었다. 몸이 그곳에 없으면 마음이라도 밤새 세워놓고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며 거친 대자보를 이어갔다. 여행하고 사랑하는 일조차 미안한 시절이었다. 눈꽃이 피면 눈꽃 보러 지리산에 가야 한다. 억새가 보고 싶으면 제주도 올레길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시인들. 하루는 비행기에 매달리다시피 하여 제주도에 다녀왔다. 김종해 시인의 ‘섬 하나’란 시를 펄럭거리면서 말이다. “어머니가 이고 오신 섬 하나. 슬픔 때문에 안개가 잦은 내 뱃길 위에 어머니가 부려놓은 섬 하나. 오늘은 벼랑 끝에 노란 원추리 꽃으로 매달려 있다, 우리 집 눈썹 밑에 매달려 있다. 서투른 물질 속에 날은 저무는데 어머니가 빌려주신 남빛 바다. 이젠 저 섬으로 내가 가야 할 때다.” 남빛 바다는 내가 없는데도 오래도록 잘 있어주었구나. 어느 날 캄캄한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았다. <시인의 사랑>이라는 영화였다. 장소는 제주도. 원추리 꽃과 유채꽃이 노랗게 일렁거리는 남빛 바다가 눈앞에 수두룩했다.

“삶의 아름다움과 비애가 동시에 내재된 시어를 사용했다면 더 깊은 울림이 가능했을 것 같네요.” 곶자왈 시동인 턱주가리 샘의 조언에 끙끙 앓던 시인. 월수 30만원의 방과후 학교 글짓기 교사 현택기 시인.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가난한 동네 청년을 사랑하게 된 시인. “세상에서 자기 혼자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건 한 사람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있어줄 단 한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 사람 망가지지 않아.” 위태롭던 감정도 사랑도 파도에 쓸려가듯 떠나가고, 똑같은 일상에 팽개쳐진 시인은 그래도 또박또박 ‘희망’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내려간다. 시인은 결국 시로써 구원을 입는 존재.

제주도 밤바다는 언제보아도 좋더라. 조선에선 북두칠성과 삼태성, 또 문창성. 서양에서는 한 덩어리로 큰곰자리 별하늘. 옛 선비들과 시인들은 급제하려고 문창성을 찾아 소원을 빌고 또 빌었단다. 좋은 시가 점지된다면 무슨 일을 못할까. 오래된 떡갈나무가 서 있는 풍경처럼 하늘엔 별들이, 땅에는 시인들이 살아주었으면 바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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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