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중화의 문명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피 흘리는 전쟁을 멈추게 하였으니 그 누구보다도 인(仁)한 사람이다.” 공자가 이토록 높이 평가한 사람은 바로 관중이다. 주나라 왕의 힘은 약해지고 제후들이 저마다 세력을 키워서 분열과 혼란이 극심해지던 춘추시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제후국들의 질서를 잡고 외세의 침략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제후들을 패자(覇者)라고 부른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로 만든 인물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지키게 되고, 먹고 입을 것이 풍족하면 영예와 치욕을 가려서 행동하게 된다”는 자신의 말처럼,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관중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백성들이 먹고살 생업과 거처를 마련해주는 일이었다. 공자나 맹자 역시 민생을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출발이라고 말했지만, 관중처럼 현장과 실용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공자는 관중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그릇이 작고 예를 모른다고 비판했는데, 관중이 전승되던 가치보다 현실적인 효용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보통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관중의 원칙이다. 맹자도 “백성과 함께 즐겨야 함”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베풀어지는 은덕이자 교화의 결과이다. 그러나 관중이 강조한 것은 민간에서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이루어줄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보통사람들의 바람과 동떨어졌거나 이해시키기 어려운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절차를 통해서 정치권력을 쥔 이들이, 정작 그들을 뽑아준 보통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애초에 알 수조차 없는 이들이라면, 이는 왕정시대보다 더 큰 불행이다. 물러섬 없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자세가 미덕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민의를 대변하며 그 바람을 실현시켜가야 할 정치인이 보통사람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신념의 권좌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설혹 그 신념이 옳다 하더라도, 때로는 내주는 것이 얻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다. 역시 관중의 말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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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