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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결국 총선을 이렇게 눈앞에 두게 됐다. 만감이 교차한다. 돌아보면 이번 총선은 2008년 촛불집회부터 기다려온 것 같다. 이후 지나온 4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지방선거, 희망버스와 안철수 현상 등이 진행됐으며, 이 과정 속에 우리 사회는 변화했고 진화해 왔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은 우리 사회를 또 하나의 새로운 시험대 위에 세워두고 있다.


총선의 의미를 나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찾고 싶다. 이 질문은 촛불집회에서 이미 주어졌다. 투표로써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가 주인인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 국민은 국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촛불을 들어 국가에 항의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 자명한 민주주의 원리를 이명박 정부가 거부했다는 데 있다. 오히려 정부는 촛불의 배후를 찾기 위해 민간인을 불법으로 사찰함으로써 우리 민주주의를 군부권위주의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


한국청년연대·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26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2012 청년유권자 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2030 세대의 투표참여 운동 등 사업목표를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DB)


민주주의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인식과 감수성은 뭐라 평가하기 정말 난감하다. 어느 나라이건 민주화가 진행되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확산된다. 우리사회의 경우 1990년대 초반 신세대의 등장과 함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강화돼 왔으며,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에도 이런 탈(脫)물질주의 경향은 꾸준히 확대돼 왔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말과 표현의 자유는 이 못지않게 소중한 가치다.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빵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지만) 민간인 불법사찰, 방송사 장악, 철지난 색깔론 구사 등 권위주의 시대의 통치를 강화했다. 이런 낡은 지배방식 아래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를 성대히 개최한들 이 행사들이 국민들에게 무슨 의미를 안겨줄 수 있었겠는가.


이명박 정부의 집권 초기 ‘민주주의 후퇴’가 논란이 됐을 때 학계 내에선 이 주장이 현실을 과장한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정당정치가 정상화돼 있지 않아서 그렇지 절차적 민주주의는 나름대로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지난 4년을 돌아볼 때 우리 민주주의는 현저히 후퇴했다. 방송사 파업들은 단적인 증거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선 국가권력을 감시하는 공론장의 기능이 더없이 중요하다. 언론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려는 방송사 파업들은 우리 사회 공론장이 놓인 서글프고도 위태로운 자리를 생생히 보여준다.


내가 강조하려는 바는 민주주의 사회에선 보수든 진보든 국가에게 부여된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유지하는,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너무도 당연한 의무다. 개인의 자유를 훼손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한다면 국민은 그 국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듣기만 해야지 말하긴 어려운, 어떤 흔적이라도 남겨선 안될 두려움을 동원하는 자기 검열의 사회라면, 이는 명백히 민주공화국의 부정이다.


선거란 본디 입법과 행정을 담당하는 국가를 선택하는 절차다. 그 두 개의 국가 중 입법의 국가를 선택하는 총선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번 총선이 갖는 일차적인 의미는 ‘입법부의 복원’에 있다. 헌법재판소, 법원, 검찰 등이 주연을 맡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에서 투표로 권력을 위임받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정치의 진정한 주역이 되는 민주주의의 복원, 정상국가로의 귀환이 총선에 부여된 역사적 과제다.


자, 이제 열리는 선택의 시간에 당신은 누구에게, 무엇에 소중한 한 표를 던지겠는가. “선이 아닌 모든 것은 악이다. 신의 지대에는 중립이 없다.” 지난 30여년간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내내 고민해 온 김수영 시의 한 구절이다. 이분법의 논리는 위험하다. 그러나 선거는 ‘선택’이다. 민주주의가 결코 포기해선 안될 선이라면, 나는 그 민주주의에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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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