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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공천이 거의 마무리됐다. 지난주 경향신문 좌담을 통해 민주통합당 공천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밝혔지만, 아쉬움이 떨쳐지지 않는다. 막스 베버가 강조하듯 학문과 달리 정치에선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책임윤리가 중요하다. 공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책임윤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없이 무거워진다.

공천 심사에 참여한 이로 말하기 어렵지만, 이번 총선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선거를 관통해 온 것은 심판론이다. 2007년 대선에서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은 정권 심판론이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치러진 1월만 하더라도 심판론에 따라 총선에서 야권의 압승이 예상됐다. 그런데 심판론이 최근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정권 심판론' 발언 I 출처:경향DB


여기엔 여러 요인이 존재한다. 먼저 주목할 것은 새누리당의 전략이다.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선거 구도를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몰아감으로써 심판론을 희석해 왔다. 진보적 시각에선 새누리당이 제시하는 경제민주화론과 복지국가론이 공허하지만, 중도적 시각에선 이명박 정권의 노선과는 다른 듯한 나름대로의 공감대를 만들어 왔다. 무엇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라는 대안의 존재는 보수적 유권자들의 결집 또한 가져 왔다.

민주통합당이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상실한 것은 또 다른 요인이다. (나 역시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공천에 대한 비판 여론, 장점보다 단점이 드러난 국민경선, 뒤늦은 야권 단일화 등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도 해군기지, 박정희 정권 재평가 등이 주요 의제로 부상하면서 결과적으로 심판론이 약화됐다. FTA와 해군기지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결코 아니다. 전략의 측면에서 새누리당의 의제 전환이 상대적으로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심판론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 이중적 의미에 있다. 하나는 ‘정권 심판론’이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의 노무현 정권 심판론, 이후 각종 재·보선에서의 이명박 정권 심판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때부터인가 ‘정부 심판론’도 작동해 왔다. 시장의 폭력에 무력한 정부의 역할을 심판하려는 시민 다수의 욕구는 기성 정부에 대한 비판을 낳았고, 이는 정부와 정당을 거부하는 정치, 곧 시민정치에 대한 열망을 폭발시켰다.

정부 심판론과 시민정치론은 모두 국가의 재구성을 요청한다. 경제민주화든 보편적 복지든 그것을 선도적으로 추진할 현실정치의 주체는 국가다.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공적 기구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많은 시민들이 절망한 것은 국가의 사익성 추구이며, 새롭게 갈망해 온 것은 국가의 공공성 복구다. 더불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구조화된 경제위기는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국가의 귀환’을 요청해 왔다.

심판론이 다시 힘을 얻기 위해선 정권 심판론과 정부 심판론이 생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양극화 심화부터 민주주의 후퇴에 이르기까지 정권에 대한 심판은 매우 중요한 의제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재정, 일자리, 재벌개혁 등을 포괄하는 정부 심판론, 다시 말해 새로운 정부 대안론을 구체화해야 한다. ‘대안이 없다’는 본래 신자유주의의 모토였다. 지구적으로 그리고 국내적으로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와 과감히 결별해야 하는 현재,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담은 심판론의 진화가 이뤄져야 한다.

공천 심사를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 착잡한 마음에 더러 펼쳐본 책이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베버는 국가를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을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로 이해한다. 내가 주목한 것은 공동체로서 국가의 위기다. 사회 공동체의 전체 이익을 위한 국가 공동체의 복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실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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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