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김 없는 명품 원피스와 손톱마다 아기자기한 네일아트가 멋들어진 여인들. 자극적인 향수와 너풀거리는 넥타이의 젊은 신사들로 넘쳐나는 세상 같지만 그건 대개 드라마 속 풍경이렷다.

“지금 대한민국에 그 정도 경제력을 갖춘 30대는 극히 일부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식당과 카페에서 음식을 나르고, 남의 손톱을 정리하고, 마트와 백화점에서 물건을 파는 엄마들이 더 많다. 딸이 태어난 후 김지영씨는 또래의 일하는 여성들과 마주칠 때면 아이가 있을까, 몇 살일까, 누구에게 맡겼을까 궁금해졌다. 경기 불황, 높은 물가, 열악한 노동현장….” 소설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드라마, 소설 속이 아니라 바로 현실이다. 오늘도 우리는 점심시간 잠깐 들르는 커피 가게에서, 마트에서, 편의점에서 각종 알바로 분주하게 일하는 지영씨와 스치며 마주하게 된다.

가끔 길에서 군입거리 사러 가시는 촌로들을 뵙곤 하는데 그분들 사는 처지라고 별다르지 않다. 이런 외지에서 자녀들이 잘되면 또 얼마나 잘되어 풍풍 용돈을 쥐여드리겠는가. 어찌 지내시느냐 여쭈면 백이면 백 “안죽응께 살재 어쭈 살긴 살겄소잉. 포로시 밥숟가락이나 떠묵고 살재.” 포로시를 이곳에서도 포도시, 포돕시로 달리 쓰기도 하는데 ‘빠듯하다’를 가리키는 말이다. 빠듯이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불행하고 서글픈 시간 속의 나라.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능력 가운데 일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고통이 동등한 것은 아니다. 병세를 평가하는 것은 환자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의사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아이티 섬마을에 병원을 차린 의사 폴 파머의 말. 가장 시급한 환부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다. 아이티에선 ‘동반자’를 가리켜 ‘아꼼빠니에또(accompagnatuer)’라고 부른다. 환자가 그만두라 할 때까지 의료진은 동반자가 되어 함께 걸어가야지. 포로시 빠듯이 살아가게 만드는 ‘경기 불황, 높은 물가, 열악한 노동현장’. 솔선해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아꼼빠니에또가 많아져야 우리네 일자리 살림살이에도 꽃이 피겠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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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