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싸는 똥은

어젯밤의 내 내력이다

그러니까 몸뚱이의 무늬다

무얼 먹었는지

무슨 말을 가졌는지

싸웠는지 하하 즐거웠는지

남김없이 보여준다

사랑과 폐허, 그리고 원망과 주저 등을

몸은 끙, 한마디로 말한다

쌓아두지 않는 게 몸의 운명인데

내가 지금껏 한 고백들, 선언들, 다짐들은

모두 무언가에 짓눌려 뱉어진 것이다

그리고 내 업이 되어버렸다

지금껏 그걸 모르고 살았는데

오늘 아침에도 똥은

아무 형식도 없이 쏟아진다

어젯밤에 술 취해 고성을 질렀던

핏대도 아프게 쏟아진다

귀 기울여보면

대체 무엇이 이보다 더 냄새나는 말인가

이 세상에

햇빛이 가닿은 우주 안에

 - 황규관(1968~)

일러서트_ 김상민 기자

오늘 배 속은 안녕하신가요? 아침마다 변기에서 똥이 인사를 건넨다. 매일 다른 색 바른 냄새로 다른 인사를 한다. 어제 먹은 음식이 몸에 맞지 않았나 봐요. 과음해서 속이 들끓느라 몹시 괴로웠나요.

똥은 어제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 내 생활습관은 건강한지 내 생각은 건전한지 매일 확인해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비밀을 발설하지 않고 아침마다 나에게만 살짝 귀띔해준다.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음식을 가려 먹으라고, 애태우지 말고 속 썩지 말고 스트레스 그만 받으라고.

더럽다고요? 냄새난다고요? 입에서 글에서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말들은 깨끗한가요? 똥이 그 말들처럼 남을 속이거나 해친 적 있나요? 더도 덜도 말고 똥처럼만 정직하다면 세상이 얼마나 향기로울까요.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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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