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단과대 행정조교로 일할 무렵이었다. 1학년 학부생 한 명과 심하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볼이 발그스름하고, 긴장하면 얼굴 전체가 홍당무처럼 되던 학생이었다. 왜 다투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신입생 기념배지 배부와 관련된 사소한 사안이었으나 당시 우리는 둘 다 마음이 상했다. 나는 조교실에 선 채 울었고, 그 친구 역시 학사지원부에 찾아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들었다. 그러다 몇 해 더 지나 고시실 담당조교를 할 때였다. 입실시험 감독관으로 들어갔더니 그 학생이 앉아있었다. 이미 신입생이 아닌 고학번이었으나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볼이 빨간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나 역시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얼굴 까만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1교시 시험이 시작되었다. 학생증 검사를 하려고 책상 사이를 지나던 중, 그 친구 언저리에서 무언가 난감한 공기를 감지하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펜에 잉크가 닳아 글씨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감독자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려니 예전의 그 못된 조교언니인지라 내키지 않고 그랬던가 보았다.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는데 그녀는 울상이 되어 펜을 흔들며 잉크가 나오게 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교탁에 놓아둔 필통에서 내 펜을 하나 집어 그녀의 책상 위에 말없이 올려두었다. 이윽고 쉬는 시간이 되자, 그 친구는 앞으로 나와서 아까 빌려주었던 펜을 탁 교탁에 얹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더니 아무 말 않고 휙 나갔다.

그 순간, 나는 기분이 상한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아, 네가 바로 나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줄넘기 시험 망치고 울다가 담임선생님이 다가와 껴안아 주시자 ‘좋아서’ 몸을 비틀어 빠져나왔던 아홉 살 무렵의, 저편에 선생님들이 걸어오시는 걸 보고 지금 목례할지 더 기다렸다 가까이 오셨을 때 인사할지 ‘망설이다가’ 허공에 꾸벅하고서 밀치고 뛰었던 열일곱 살의, 그리고 앙증맞은 빨간 장화를 가리키며 “너 그 코트 입고 이 장화 신으면 빨간망토 차차처럼 귀엽겠다”던 선배오빠의 말에 그만 ‘설렌 나머지’ 도리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던 스물 몇 살의 내 모습이 머뭇거리다 휙 나가던 그녀의 몸짓 안에서 보였다. 그 ‘수줍은 예의 없음’을 나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마음에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자애로운 감정이 솟았다. 쉬는 시간에 사온 펜으로 고개 숙이고 답안만 쓰던 그녀의 머리 위로 나는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따스한 시선을 2교시 내내 쏟아부었다.

어쩌면 또 모른다. 그 친구는 그야말로 싫어서 펜을 던지고 나간 것뿐일지도. 저 못된 조교언니 펜으로 시험 보려니 글씨가 안 써진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풋내기 선생으로 살아가면서 종종 그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볼이 빨갛고 내성적인 누군가의 빈틈을 알아보게 만든, 얼굴 까맣고 내성적인 다른 누군가의 동일한 빈틈.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비록 학생들에게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모델이나 근사한 멘토가 되어주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지닌 모종의 빈틈으로 인해 타인의 그것을 한층 세심하게 알아차리고 보듬어줄 수는 있을 거라고. 그리하여 싱그럽고 화사하며 당찬 젊음의 틈새에 숨어든, ‘수줍다고 인사 못하고’ ‘소심해서 예의 없는’ 몇 안되는 얼굴들을 누구보다 먼저 찾아 다독일 것이라고. “내가 너야. 그래서 나는 알아본단다”라며 말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앳됨의 마지막 흔적마저 얼굴에서 지워지는 날도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여전히 수줍다며 고마운 이에게 어색하게 행동하는, 황당한 할머니일지 모르겠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선의의 상대방들이 ‘좋아서’ 혹은 ‘설렌 나머지’ 부자연스러워진 자의 내심까지 들여다보고 알아채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테다. 다만 살면서 우리가 자신과 닮은 이들의 빈틈을 알아보고 다정한 이해의 눈길을 보내었던 그 순간들이 우리의 상대방들에게도 깃들여, 황당함이나 불편함 대신 이해의 웃음을 선물해주기를 소망해본다.

<이소영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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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