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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나는 알파고가 바둑 챔피언에 도전하는 서양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생각해보니, 사람이라고 해도 맞는 이야기다. 원래 인공은 사람 몸의 확장, 일종의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혈액과 세포가 없어도 안경, 철심, 컴퓨터 등 기계는 몸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이는 내 생각이 아니라 “미디어는 메시지다”로 유명한 철학자 맥클루언이 1960년대 주장했던 바다. 사이보그나 로봇 역시 ‘인간적’ 성질과 기능(직관, 추리, 자율성…)을 갖추고 있다. 과학 기술 담론은 그 범위가 확대될수록 “인류의 진화”, “SF소설이 현실이 되었다”며 인간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SF,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적으로’ 말하면 모순이다. 공상을 현실에 실현하는 과정이 과학인지는 모르겠으나 공상 자체는 과학이 아니다. 통념과는 달리 대부분의 SF 장르 특히 영화는 가장 진부한 장르다. SF 영화는 상상력과 과학의 이야기라기보다 미국 중심의 국제정치학이다. 은유도 아니다. 대놓고 말한다.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외계인의 공습이 있고 지구의 수호자를 자처한 미국이 나서서 그들을 물리치는 스펙터클한 화면. 이것이 대개의 SF 영화다. 이를 통해 미국은 자국의 과학 기술을 자랑하고 인류의 지도자로서 등극을 반복한다. 유럽의 SF 영화가 드문 이유다. ‘북한’이나 ‘소말리아’가 지구를 구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만일 남한이 외계인을 발견했다면 미국에 신고할 것이다. 이처럼 SF는 할리우드의 지역 특산품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백인 남성처럼 인간을 표상하는 그룹이 외부와 접촉하면 우리는 이를 대결(match)이라 부른다. 그러나 ‘비(非) 인간(유색인종, 여성…)’과 외계의 접촉은 오염이나 오염 여부를 실험하는 장이 된다. 전자는 우리를 기쁘게 하지만 후자는 혐오감을 준다. 영화 <디스트릭트 9>은 외계인과 싸우는 내용이 아니라 그들을 감시, 격리하는 얘기다. 이런 일에는 미국이 나서지 않는다. 이런 텍스트는 SF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예술 영화’, ‘정치 영화’가 된다(남아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SF로 풀어냈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 “누가 더 우수한가” 식의 사고는 위험하다. 누구도 인간을 대표할 수 없으며 사회는 균질적이지 않다. 이러한 언설의 효과는 차별을 비가시화하고, 억압자와 피억압자를 단결시킨다. 우리는 이번에 알파고를 통해 가장 뛰어난 인간 이세돌, 가장 발전한 인간의 기술(구글)과 동시에 동일시되어 열광했다. 소재가 바둑이어서 다행이다. 군사력이라면 어떻겠는가. 과학의 발달은 차별과 지배 없이는 불가능하다. 연구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평등을 전제한 사고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 개인의 현실은 천차만별이고 과학의 필요성 수준도 인구수만큼이나 다르다. “일자리가 없어진다”, “인간성 상실”은 인공 지능 상용화의 결과가 아니라 출발이다. 과학 발전을 주도하는 세력이 “어떻게”보다 “왜”를 먼저 고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불행히도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대다수 인류인 장애인, 환자, 가난한 이를 위한 사례는 역사상 ‘없었다’. 과학의 발달이 지구와 인간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의인화된 과학의 자기도취처럼 역겨운 것도 없다.

반면 ‘킹콩’, ‘슈렉’, ‘미녀와 야수’를 생각해보자. 인간이 동물 등 반(半)인간과 접촉할 때(사랑과 섹스) 인간의 대표가 남성인 경우는 없다. 반드시 여성이다. 남성이 반인간과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은 죽는다(인어공주). 이때 여성의 몸은 새로운 종(種)의 출현을 위한 실험 도구가 된다. 인간과 기계, 동물과의 섹스는 끔찍하다고 생각하지만 신화, 동화나 영화에는 수없이 재현된 익숙한 이야기다. 여기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남성)이 만든 인공물이다. 여성과 킹콩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성도 킹콩도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 발전이 곧 인간의 진화라고 믿는 발전주의자들과 논쟁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공지능 개발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인류의 정보 격차, 아니 당장 물 부족과 에이즈를 해결하는 데 조금만 분산 투자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능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데 <프랑켄슈타인>만 한 소설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괴물’이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죽이는 이유는 “피조물에 의한 인간 지배”가 아니다. “나도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여자 피조물)을 만들어 달라”는 괴물의 외로움 때문이었다. 친밀감, 사랑, 감정은 유기체만의 특성이자 가장 강력한 능력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유형화된 사고가 아니라 감정(mood)이라는 에너지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국은 이세돌 9단의 완벽한 승리다. 물론 구글이 가장 많은 돈(효과)을 벌었지만 돈이 곧 승리는 아니니까.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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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