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4월의 끝자락에 강원도 홍천 도사곡리의 깊은 골짜기 끝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흩어진 인가 서너 채와 조그만 밭뙈기. 그 한 귀퉁이에 하얀 꽃을 무겁도록 달고 있는 건 야광나무였다. 밭에 딸린 나무 한 그루, 야광나무를 뒤따라 참 좋아하는 시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제목 덕분이기도 했다.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김중식) 식물학과 졸업하고 33년이나 지나 뒤늦게 꽃에 빠지니 눈에 보이는 게 다 식물이다. 이 뒤늦은 후회를 어찌하나. 오늘처럼 그 휘황한 야광나무를 가슴에 담고 오는 날이면 정류장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도 모두 나무로 보일 때가 있다. 파라택소노미스트(준분류학자)의 어설픈 지식으로 이렇게 동정(同定)해 보기도 한다.

암수딴몸. 두 개의 가지가 겨드랑이에서 대칭으로 나온다. 가지 끝은 다섯 갈래로 찢어진다. 짧은 모가지 위의 이목구비는 한 면에 모두 쏠려 있다. 열매 같은 얼굴의 정수리 부근에 잔뿌리가 울창하다. 처음에는 검었다가 차츰 하얗게 변하며 드물게 몽땅 빠지기도 한다. 가슴 근처가 조금 복잡하다. 가슴 아래에는 그보다 더 복잡한 사타구니가 있다. 여기로부터 몽당한 뿌리가 둘 뻗어나가지만 신발로 차단된다. 그것들은 돌아다니는 데 능숙하다. 그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아직도 헤매는 중일까? 산 아래쪽이나 물가에 높은 집을 짓고 모여서 겨우 지낸다. 잎자루처럼 발목은 잘록하다. 내부에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손바닥, 발바닥을 제외한 전신에 솜털이 빽빽하다. 무슨 소리가 웅얼웅얼 나오는 입구인 입술에도 털이 없다. 수십 년 직립하여 살다가 그 어디로 떠난다. 동물계 영장목 사람과의 포유류.

밤늦게 귀가하니 울긋불긋 단풍잎 같은 벽보가 요란하다. 어둑해질 때까지 혹 밭에 계신 할머니를 위해 꽃을 켜고 있는 야광나무를 떠올리며 몇 마디 덧붙인다. 해마다 낙엽을 만들어 산을 갱신하는 나무와 달리 5년에 한 번 생각을 떨구어 투표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야광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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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