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그 길은 나에게 유일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가치 있다. 어느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그 길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매일 아침 그날에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나만의 의례를 행한다. 골방에 들어가 가운데 자리 잡고 눈을 감고 반가좌를 틀고 앉는다. 그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몰입하지 않으면 상념에 빠져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깊은 생각의 심연으로 들어가면, 내가 그날에 행동으로 옮겨야 할 바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임무를 대담하고 간결하며 거침없이 마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어두운 숲속 건너편에 있다.

유럽 중세의 어두운 숲에서 나와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한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이탈리아 시인인 단테다. 그는 원래 피렌체의 정치가였다. 1302년 그가 추방당한다. 그가 외교관으로 외국에 머무를 때, 정권이 바뀌면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귀향길에 오른다. 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랐다. 동료 추방자들과 혁명을 기획하고 심지어는 적들과 함께 반역을 꾀하지만 피렌체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단테는 정치가로 이탈리아를 통일할 정치가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각 도시에서 사용하는 방언들을 통일하여 이탈리아 정신을 통일시킬 문필가로 거듭난다. 그는 이 추방의 기간을 통해 자신의 심연을 깊이 응시하여 위대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신곡>을 1308년부터 죽은 해인 1321년 사이에 저술한다. <신곡>은 추방과 소외라는 ‘어머니’가 낳은 ‘자식’이다.

<신곡>의 첫 부분인 <지옥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곳은 반듯한 길이 숨겨져 있는 장소다.” 단테는 이 첫 문장에서 대명사 ‘우리’와 ‘나’를 대비시킨다. 그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자신이 경험할 ‘지옥’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나’는 1321년에 죽은 단테 자신을 말하지만, 그가 감행하려는 지옥여행은 그가 독자에게 바라는 우리 삶의 일부다. 단테는 이 숲속에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미로에 봉착해 있었다. ‘어두운 숲속’은 아직 형태도 없고, 이름도 없는 숲이다. 1세기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도 <아이네아스>라는 책에서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 잡은 검은 숲을 언급한다.


어거스틴도 <신의 도성이라는 책에서 로마제국의 멸망을 묘사하면서 이 장소를 ‘낯선 장소’라고 말한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헤매는 광활한 장소이다. 인생에 있어서 자신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운명을 찾아 ‘헤매는 숲’이 있다.

‘어두운 숲속’에는 ‘반듯한 길’이 숨어 있다. 단테는 그 숲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을 제 삼자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을 제2의 자아가 되어 낯선 자의 눈으로 관조한다. 자신 스스로 자신의 관찰자가 되어 숨소리조차 응시한다. 단테는 이 ‘어두운 숲속’에서 그림자처럼 자신을 인도하는 한 인물을 발견한다. 그 인물은 1세기 로마 작가 베르길리우스였다. 단테는 그를 통해 지옥에서 빠져나와 연옥과 천국으로 여행한다.

‘어두운 숲속’은 우리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갈 수련의 장소다. 이 숲에 들어서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아닌 척하던 것들, 체면이나 남들로부터의 기대와 같은 것들을 벗어던지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의 삶에 있어서 추호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들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 저자이며 영국 최고 갑부가 된 조앤 롤링은 26살일 때 자신을 이렇게 덤덤하게 묘사한다. 자신은 이혼녀였으며 한 딸의 엄마였고 영국 런던 거리의 홈리스였다. 그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안에 갇혀 있었다. 그 터널이 얼마나 긴지, 그 끝에는 불빛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지옥’이었다. 그녀는 그 한가운데에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과 사랑하는 딸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멋진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 상상력과 오래된 타자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의 ‘어두운 터널’은 그녀가 인생을 통해 이루어야 할 그녀만의 임무를 감지하는 에피파니의 순간이 되었다. 에피파니는 고대 그리스어로 ‘신이 자신의 모습을 찾는 자에게 드러내는 현현(顯顯)’이다. 그녀가 한없이 추락한 심연은 이제 단단한 바닥이 되어 그녀가 다시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발판이 되었다. ‘어두운 터널’은 조앤 롤링 안에 숨겨진 위대한 DNA를 발휘시키는 잔인하지만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보다 강한 의지가 있고 그 의지를 관철시킬 끈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러한 자신의 발견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녀의 가장 훌륭한 자산이 되었다.

‘어두운 숲속’에서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실패가 두려워, 그 숲속에 들어가기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런 행위 자체가 실패이며 먼 훗날 그 여행을 감행하지 않는 자신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 거친 숲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장비가 있다. 그 장비는 자신을 흥분하게 만들어 자신의 전적인 열정을 요구하는 자신만의 미션이다. 우리가 언젠가 죽을 것이란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정말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죽음도 아깝지 않은 미션은 무엇인가?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지난 칼럼===== > 배철현의 심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정  (0) 2015.10.29
두 갈래 길  (0) 2015.10.15
어두운 숲속  (0) 2015.10.02
유디스티라의 개  (0) 2015.09.03
착함  (0) 2015.08.20
새끼 거북이의 임시 치아  (0) 2015.08.0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