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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목 통증 치료사, 안과 의사, 인문학 강사. 장담컨대 이 직종들은 앞으로 최소 5년 안에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유망한 직업으로, 인력 부족을 겪는 분야가 될 것이다. 인문학 강사의 경우, 대학에서 인문학은 사양길 정도가 아니라 이미 ‘사망’한 지 오래지만(전공자가 대학에 취업하는 것은 어렵지만) 어느 사회나 ‘교양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직업은 스마트폰과 관련한 건강 전문가들이다. 인터넷 인프라 세계 최고, 2013년 현재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2015년 3월 가입자 기준으로 성인 83%의 보급률. 우리 주변을 보자.

길거리, 집안, 사무실, 강의실, 버스, 전철 안은 기본이다. 심지어 횡단보도, 불 꺼진 극장, 데이트 중에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쥔 채 머리를 숙이고 있다. 시력과 경추 부위 이상은 필연적이다. 지금도 많지만 뒷목, 어깨, 윗등 근육통, 두통을 동반하는 거북목증후군 환자가 폭증할 것이다.

본질적인 이슈, 그러나 거의 논의되지 않는 문제는 스마트폰이 인간의 존재를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둔하고 싶거나 혹은 실종자로 처리되고 싶다면, 스마트폰만 꺼 두면 된다. 휴대전화 번호가 시민권을 대체한 지 오래다. 어디를 가든 전화번호를 입력하라고 한다. 전자우편 비밀번호 변경, 기차표 예약, 은행 계좌 개설까지. 사회는 누구나 스마트폰이 있다는 가정에서 돌아가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질문에 왜 사람이 아니라 전화기가 답해야 하는가? 주민등록증 없이는 살아도 휴대전화 번호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세상이다.

통신사가 막대한 비용을 챙기며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소비주의, 자본주의 원리라고 비판하는 것은 너무 소박하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자발적인 전체주의 사회가 있었던가.

공중전화 같은 공공 서비스는 사라져가고, 맥루한의 지적대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자기 몸을 확장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기계류를 좋아하는 일부 남성들은 자신이 소유한 기계의 성능이나 가격이 자아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컴퓨터, 휴대전화의 새 기종이 나오면 달려가는 얼리 어답터(early adapters). 나는 이들이 핵, 원자력, 전쟁보다 ‘더’ 두렵다. 인문학의 실종 때문일까. 이 기기들이 양산하는 산업 폐기물의 재앙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 가입자 인증을 위한 핵심 부품인 유심(USIM) 칩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이를 구성하는 금속 성분이 다른 물질과 합성될 경우를 대비한 지식은 접하기 힘들다.

한국은 보수, 진보, 페미니스트 할 것 없이 성장주의, 발전주의자들의 사회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전 국민적 스마트폰 사용을 비판하거나 문제제기하는 논의를 들은 적이 없다. 모두가 구입과 사용을 당연시한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으로 인한 리콜 비용이 1조5000억원에서 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회사 측의 폭발 위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 중 환불을 요구한 이들은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아직 100만개가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다. 생존보다 소비가 먼저인 사회다.

100만원을 전후한 ‘갤럭시노트7’이 출시되자 ‘5’는 22만원대로 떨어졌다. 나는 얼마 전 아버지를 위해 ‘노인폰’이라는 2G 폴더폰을 15만원에 구입했다. 스마트폰은 어디까지 진화해야 하는가. 아니, 이것이 진화의 문제일까. ‘7’과 ‘5’의 차이(약 80만원)와 ‘5’와 ‘2G’(7만원)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이는 진화라기보다는 이익을 위한 유행 창출이라는 기업 정신일 뿐이다.

20여 년 전 일이긴 하지만 1997년 어느 대통령 후보는 대선을 치르기 위해 “천억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이 정확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언저리라는 뜻일 것이다. 2조원. 0자리 숫자가 6개(100만원)만 넘어가면 뇌가 멈추는 나 같은 사람에겐 상상할 수 없는 액수다. 그 정도의 돈이 ‘갤럭시7’의 수익 비용도 아니고(!), 리콜이라는 생산 비용의 일부다.

2조원을 다른 곳에 쓴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친환경 급식, 농가 부채 탕감, 가난한 암환자를 위한 치료비, 아르바이트 시급 1만원 책정, 시간강사 월급제, 택시기사 사납금제 폐지, 가정폭력 피해여성 쉼터,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위한 의료 복지, 장애아동을 혼자 감당하는 엄마를 위한 사업…. 잠시 ‘로또’를 꿈꾼다.

물론 그 돈은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돈이고, 5와 7의 차이는 ‘클 것이다’. 하지만, 2조원. 이것은 과학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향후 자본주의 사회의 방향을 가늠하는 사건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 문제인가. 기술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이익을 보는가. (내가 가장 궁금한) 도대체 인류는 누구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것일까. 누가 인간을 우러러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일까. 과학기술 발달의 목표는 편리함인가? 대안적 편리 개념은 없을까. 어디까지 발전해야 성이 찰까. 오래된 질문조차 멈춘 시대다.

발전주의에서 살아남을 방도를 모색할 때다. 발전지상주의는 경제 강국이 아니라 종말론적 신앙이다. 생산과 소비를 무한정 늘리고, 시장 교환 체제를 확대하고, 자연을 얼마나 더 뒤지고 파헤칠 것인가. 스마트폰은 스마트하지 않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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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