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라 경제와 정치를 비롯해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경은 “어처구니없다”가 대세인 것 같다. 이 말은 작년 하반기에 특히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의 대사 “어이가 없네” 때문이다. 영화에선 ‘어이’를 맷돌 손잡이로 설명하면서 ‘갑자기 손잡이가 빠져 맷돌을 못 돌리니… 황당하다’로 풀이했는데, 한편에선 ‘어처구니’라고 해야 옳다는 논란이 있었다.

하나 이는 기와지붕의 토우(土偶)다, 맷돌 위아래를 연결하는 암수 쇠붙이다 등 ‘어처구니’의 어원에 대한 민간의 여러 속설 중 하나일 뿐이다. 사전 정의로는 ‘상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 기계, 물건’이란다. 이런 ‘어처구니’가 ‘없다’와 붙어서 어떤 연유로 “어이없다”는 뜻으로 사용됐는지는 모호하다.

아무튼 충격, 분노, 체념을 지나 허탈의 지경에 이르러 “어처구니없다”라고 할 때는 이성 정지와 감정 진공의 ‘멘털 붕괴’ 상태를 가리킨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지켜보는 세간의 심리도 ‘설마’ 하던 단계를 지나 이제는 “어처구니없다”에 이른 것 같다. 그래봐야 바둑 잘 두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일 뿐이고, 인간지능을 따라오려면 수십년이 걸린다는 ‘알파고의 아버지’ 허사비스의 위로도 있고, 인류의 초라함과 미래의 위대함을 동시에 느낀다는 정치인의 자기연민 같은 감상평도 있고, 알파고의 승리를 집단지성과 빅데이터를 만든 인간의 승리로 해석하는 희망고문 같은 논설도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폭풍 발전이 몰고올 일자리 소멸의 온갖 분석과 수치들은 논리정연하게도 암울하다.

근미래를 지배할 인공지능의 사회 예측은 온통 격변이다. 과학전문지, 대학연구소, 컨설팅업체, 조사기관은 말한다. 20년 안에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47%와 35%가, 14년 안에 지구촌에서 20억개가, 4년 안에 5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어떤 계산식이든 ‘인공지능 쓰나미’라 부를 만한 이 사태는 의료, 법률, 금융, 행정 같은 전문 노동에 종사해온 중산층의 대몰락과 불안정 노동사회의 보편화를 예고한다. 가뜩이나 고용절벽과 소득절벽에 처해 기진맥진한 우리 사회에서 알파고라는 이름은 이제 인간으로 태어난 운명을 “어처구니없다”로 만드는 유령의 대명사처럼 회자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면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을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알파고라는 유령이!”라고 다시 썼을 것 같다.

그러나 문제가 정말 인공지능 그 자체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빠진 집단 착각과 함정이 무엇인지를 의심해봐야 할 때가 지금이다. 알파고를 “서구의 디지털 지능”으로 보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생전에 터미네이터를 실제로 맞닥뜨리는 중세기술사회”에 직면할 터라서 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아날로그, 즉 디지로그”를 믿자고 말하는 이어령 선생의 혜안도, “우리가 목격한 건 혹시 ‘알파고의 영혼’이었을까?”라고 물으며 “오히려 인공지능이 제한된 수준의 사회적 상호작용만 가능하다는 것”에 착안해 인공지능을 능가할 “신경과학과 뇌과학의 발전”에 주목하는 정재승 교수의 제안도 우리 사회가 우리 당대에 집단 착각과 함정에서 빠져나왔을 때라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경제 불평등 문제다. 경제민주화가 없다면 ‘10 대 90’에서 ‘1 대 99’로 1%의 1%의 1%에게 자본과 권력이 귀속되어 ‘0.01 대 99.99’ 너머로 무한질주하는 설국열차 맨 앞 칸의 인공지능을 소유한 그가 모두의 운명을 지배할 것이다. 700조원을 넘은 대기업 사내유보금과 600조원을 넘긴 국가채무와 1000조원 이상의 가계부채가 서로 관계없다는 듯 행동하는 우리의 집단 착각과 함정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의 혜택과 이익을 만인이 누릴 것이라는 낙관론은 사기극의 대사일 뿐이다.

하여 “어처구니없다”는 말을 앞으로는 “터무니 있다”로 바꾸어서 그 ‘터무니’의 재발견과 재구축에 공을 들여야 한다. 지난 11일 서울시와 각계가 공동 선언한 ‘경제민주화 특별시’는 공정한 경제 질서와 노동권 보장을 통해 지역의 경제생태계를 살리겠다는 구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과 대기업 문제에는 중앙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크겠지만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지역의 중소기업, 소상공인, 소비자와 연대해 “터무니” 있는 상생과 선순환의 구조로 재조직하는 과제는 누가 시작하든 시급한 일이다.

“터무니 있는” 지역의 경제생태계 구축에는 아파트 연 관리비 총액 12조원의 부패를 해결할 아파트 민주주의를 위해 동별 대표자 선발에 모바일투표를 적용하는 과제도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고교 졸업생보다 훨씬 많은 대학 정원으로 수년 뒤부터 문을 닫아야 할 대학 문제도 인위적 전공 조정이 아니라 지역에서 해법을 찾는 자유학기제 같은 발상으로 풀어야 효과가 있다. 명사 ‘터무니’는 주춧돌이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의 흔적이다. 즉 생활의 기본이자 중심인 ‘터무니’에 인공지능이 기여하는 길이 열려야 “어처구니없다”가 아닌 “터무니 있다”의 세상이 시작될 수 있다.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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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