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윌리엄 개스는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두고 “소외, 부조리, 권태, 공허, 퇴폐, 역사의 포악성, 변화의 비속함, 고통으로서의 의식, 질병으로서의 이성이라는 근대적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로맨스”라고 불렀습니다. 이 멋진 수사를 줄여 말하면, 선생님이 염세주의자라는 뜻일 겁니다. 기실 선생님의 도저한 염세주의(때때로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결국은 회의주의를 거쳐서 허무주의에 이르고야 마는 그 염세주의)는 선생님의 글 곳곳에서 읽힙니다. 선생님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골칫거리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늘 절망의 꼭대기에서 살았다고 털어놓으셨습니다. 20대의 선생님이 염세주의에 허우적대는 걸 보신 선생님의 어머니가 “네가 이렇게 불행해할 줄 알았다면 너를 낙태했을 텐데”라고 말씀하셨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생님은 그 염세주의의 끝간데를 상품화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지금도 수많은 독자를 매혹합니다. 그 독자들 가운데 선생님만 한 염세주의자는 많지 않겠지만, 그들 다수는 선생님의 염세주의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거나 아이스크림처럼 소비합니다. 선생님은 자주 삶의 무의미와 비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무의미와 비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외려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산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자살이라는 보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삶의 무의미와 비참이 정녕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자살해버리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튼 그 자살이라는 보험에 기대어 선생님은 삶의 무의미와 비참을 견뎌냈고, 고종명하셨습니다. 향년 84는 장수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그리 박한 세월은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그 지독한 염세주의가 혹시 제스처는 아니었나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선생님께는 억울한 말이겠지요.

뒷날 뉘우치시긴 했지만, 젊은 시절의 선생님은 파시스트였습니다. 조국 루마니아의 극우민족주의 단체 철위대에 가입하셨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만큼 호감이 가고 존경할 만한 동시대 정치인은 없다”는 망언까지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가까운 친구인 종교학자 미르차 엘리아데 선생님이나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 선생님도 젊은 시절 그 극단적 민족주의 둘레를 어슬렁댔지요. 물론 선생님과 친구분들은 장년에 들어 그 폭력의 철학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친구분들과 달리 선생님은 극단적 허무주의로 돌아섰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세상과 삶에 대한 선생님의 절망이 근본적이고 절대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폭력을 통해서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면 그쪽에 선생님의 몸을 걸 수도 있었겠지만, 선생님께는 그런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았겠지요.

어쩌면 그 염세주의는 선생님이 대부분의 삶을 이방인으로 사셨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은 언젠가 “나는 이방인이다. 파리 경찰국의 형사에게도, 신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라고 말씀하셨지요. 물론 선생님이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으셨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한편으로, 젊은 시절 선생님을 유혹했던 파시즘과 장년 이후 선생님의 상표가 된 염세주의, 허무주의에는 어떤 친연성이 있다는 의심도 해봅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극도로 탐미적인 문체와 세계인식 때문입니다. 선정적 방식으로 자살한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보여주었듯, 극도의 탐미주의는 파시즘과 허무주의 양쪽으로 통로를 내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것은 선생님의 이념을 시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프랑스 소설가 생-존 페르스는 선생님을 “폴 발레리의 죽음 이래 우리 언어에 명예를 준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라고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20세기 프랑스문학사의 꼭대기에 있는 산문가로 평가됩니다. 프랑스어가 선생님의 모국어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선생님은 부쿠레슈티 대학 재학 시절에는 루마니아어로 글을 쓰셨고, 베를린 대학 유학 시절에는 독일어로 글을 쓰셨으며, 스물여섯 살에 부쿠레슈티 프랑스문화원의 장학금을 받아 파리에 와서 정착하고 얼마 뒤부터는 오직 프랑스어로만 글을 쓰셨습니다. 선생님이 모국어인 루마니아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작업 언어로 선택하게 된 계기는 선생님의 술회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날 노르망디의 디에프(저도 여러 번 가본 도시입니다. 바닷가의 깎아지른 듯한 그 절벽들이란!)의 한 여관에서 말라르메의 시를 루마니아어로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선생님은 ‘아무도 읽어줄 사람 없는’ 선생님의 모국어에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읽어줄 사람이 많은’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 결심을 지키셨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쓰면서 그 언어로 쓰인 문학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선생님의 친구들인 이오네스코 선생님이나 엘리아데 선생님, 그리고 영어로 글을 쓰다가 프랑스어로 작업 언어를 바꾼 사뮈엘 베케트 선생님이나 폴란드어를 버리고 오직 영어로만 글을 쓰신 조지프 콘래드 선생님 같은 분들이 드문드문 있긴 하지만, 저는 그 경지가 상상되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 저는 영어로 글을 써보기도 했고,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로 글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그 언어들 가운데 하나를 작업 언어로 삼겠다는 야심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헛된 바람이었다는 것이 이내 드러났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쓸 때, 저는 제 생각을 그 언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제게 허락한 생각들만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제가 그 언어들을 너무 늦게 다루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허황한 꿈을 접고 제 모국어인 한국어로만 글을 씁니다. 선생님의 과장된 표현을 빌리면 ‘아무도 읽어줄 사람 없는’ 제 모국어로 말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어느 언어보다 한국어를 사랑하는 저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제 책이 되도록 많이 읽히길 바라는 저에게는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문득, 선생님이 반세기쯤 뒤늦게 태어나 저와 동세대인이 되었다면, 선생님이 고른 작업 언어가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어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글을 쓰실 무렵에 이미 프랑스어의 위세는 영어에 뒤지고 있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영어는 다른 어떤 언어의 도전도 받고 있지 않는 국제보조어가 되었습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보통화(표준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보다 훨씬 적고,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보다도 약간 적지만, 영어의 위세는 보통화나 스페인어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영어 사용국이 아닌 모든 나라에서, 모국어 다음에 배우는 제2언어는 거의 예외 없이 영어입니다. 선생님이 글을 쓰기 시작하셨던 무렵의 유럽처럼 프랑스어나 독일어가 아닙니다.

한 20년 전부터 한국에선 영어공용어화론이 띄엄띄엄 일고 있습니다. 한국어와 함께 영어도 공용어로 지정해 어려서부터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영어로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나 관행은 언어민족주의자들의 강한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모국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거의 모든 문인들의 숙명이니까요.

영어의 공용어화가 민족어들의 힘을 약화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어를 없앨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민족어에 대한 사랑을 뒷받침하는 민족주의가 쉬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민족주의 때문에 영어에 벽을 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지 않는다면, 많은 나라에서 ‘영어 갭’이라고 할 만한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영어를 배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게 되고, 그 지식과 정보에 기대어 더 많은 부를 쌓을 것입니다. 가난 때문에 영어를 배울 기회를 잃는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돼 끝내 가난할 것입니다. 제가 배운 민주주의는 이런 불평등을 용인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영어공용어화론을 펼치는 이 자리에, 작품생활 대부분을 프랑스어로 하신 선생님을 소환한 것이 송구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루마니아어로만 글을 쓰셨다면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남겼다 하더라도 그 이름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에도 한국어로만 글을 쓰기 때문에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할 젊은 재능들이 수두룩합니다. 저는 가능하면 제 손녀 세대가, 늦어도 제 증손녀 세대가, 한국어와 함께 영어를 자유롭게 쓰기 바랍니다. 많은 논점을 누락시키고 제가 편 거친 영어공용어화론이 선생님에게 맞갖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되도록 널리 읽히기 위해서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글을 쓰신 선생님은 제 마음의 일단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