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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줄 끊어지자 진면목이 드러나고 도깨비들 햇빛 비치자 소굴 찾아 숨는구나.” 조선 경종 때 목호룡이 이희지의 작품이라며 고변한 시의 일부다. 진위와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이 시는 엄청난 피바람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고변한 측의 풀이는 이렇다. 경종이 모든 처분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두 명의 내시에게 의지했는데 그 내시들이 처벌되자 결국 본색을 숨기지 못하게 되었고, 주변의 음흉한 무리들도 다 숨을 곳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 시가 당나라 한유가 영정(永貞) 연간의 상황을 그린 <영정행>의 모티프를 차용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영정행>은 무능한 임금과 그에 빌붙어서 잇속만 챙기는 이들을 비판한 작품이다. 당시 순종은 중풍을 앓아서 벙어리가 되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궁궐 깊은 곳 휘장 속에만 들어앉아 있었다. 모든 정사는 내시 이충언과 궁녀 우씨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들 주변에는 뇌물과 비리, 협잡이 가득했다. 한유는 그 상황을 여우와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머리 둘 달린 뱀이 출현하는 을씨년스러운 광경으로 묘사했다. 이희지의 작품으로 지목된 <속영정행>에서도 옛적 영정 때의 일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다면서 제 세상 만난 듯 날뛰는 소인배들을 여우와 올빼미에 비유하였다.

무능한 왕도 문제고 그 왕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한 내시도 문제지만,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적절히 이용하면서 자기 권세를 누린 영악한 대신들이야말로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왕이 아무리 괴승 신돈에게 놀아났다고 해도, 고려가 멸망한 결정적인 원인이 신돈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권력을 휘둘러온 이들에게 책임도 묻는 것이 마땅하지만, 역사는 대개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내시를 쳐내고 왕을 바꾸고도 여전히 다른 모양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다.

음침한 여우 울음소리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 죄 없는 이들에게 부끄러움마저 안기는 이 시대에, 그 원인을 만든 이들이 또다시 새로운 권력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이합집산하도록 둬서는 안된다. “어느 집 여자 무당이 새 귀신에게 기도하는지, 봄날 밤 거리에 나앉아 질장구 두드리며 노래하네.” <속영정행>의 구절이 다른 의미로 심장하게 다가온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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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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