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흥사 일지암의 법인 스님에게 연락을 했다. 스님은 “잠깐만요”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5분 뒤 전화가 걸려왔다. “토요일에 산사음악회에 쓸 도토리묵을 쑤느라 전화를 못 받았네요. 끓을 때 저어주지 않으면 묵이 굳거든요.” 지역민과 함께하는 사찰을 꿈꾸는 스님의 목소리에는 도토리묵 향기가 배어 있었다.

종림 스님이 머무는 함양 안의의 ‘고반재’는 주말이나 휴가철이 되면 북적댄다. 스님은 20여년 전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사업을 착수해 완수했다. 주위의 만류로 여태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 직함을 떼지 못한 스님은 고반재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만난다. 절 아닌 듯, 절집 같은 그곳에서 사람들은 말하고, 침묵하고, 행동하고, 휴식하는 스님의 어묵동정 하나하나에 빠져든다. 스님의 향기다.

사람들은 절집의 향기를 맡으러 절에 간다. 대웅전에서 피어나는 향이 그리워서가 아니요, 연못을 채운 연꽃 향기를 맡으러 가는 것도 아니다. 참선하고 법문을 행하는 스님들이 전하는 향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부처, 불법과 함께 삼보(三寶)의 하나로 꼽힌다. 지금은 여름 안거 기간. 전국 산사에서는 1000여명의 수좌들이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

서울 도심 사찰 조계사의 정취는 다르다. 노스님이 20일째 단식농성하고 있어서다. 이를 지지하는 피켓 및 촛불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87세의 설조 스님은 조계종단의 개혁과 설정 총무원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총무원 측은 위원회를 구성해 규명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설조 스님은 ‘약봉난행시 기석기근육(若逢難行時 豈惜幾斤肉, 요구사항이 해결되지 않으면 육신도 아끼지 않겠다)’이라는 게송까지 내놓았다. 목숨까지 걸겠다는 것이다. 단식이 지속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조계종 총무원의 부정부패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자승 전 원장 이후 총무원의 비리와 일탈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노스님의 단식을 계기로 조계종이 ‘맑고 향기로운’ 청정도량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보다 당장 시급한 것은 종단 차원에서 노스님이 단식을 멈추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 일이다. 생명 살리기는 불교의 첫번째 계율이 아니던가.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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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