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피겨여왕’ 김연아는 한 종편채널의 어처구니없는 보도로 곤욕을 치렀다. 이 종편채널은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열린 ‘국민대합창’ 행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연아의 손을 먼저 잡으려 했으나 거절당했다는 내용의 보도와 함께 관련 영상을 내보냈다. 하지만 이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에 따른 것으로 판명났다.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당시 합창을 위해 출연자 간 자리배치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대선출마를 선언했다가 사퇴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퇴주잔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 귀국한 직후 충북 음성의 부친 묘소를 찾은 반 전 총장이 퇴주잔을 묘소 주변에 뿌려야 하는데 본인이 마셔 버렸다는 영상이 유포돼 파장이 일었다. 하지만 전체 영상을 보면 반 전 총장은 첫 잔을 받아 묘소에 퇴주하고, 둘째 잔은 묘소에 올린 뒤 절을 하고 음복했다. 인터넷에 유포된 영상은 퇴주 과정을 생략한 악마의 편집이었던 셈이다.

최근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펴낸 수필집 <남자란 무엇인가>에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적지 않아 ‘왜곡된 여성관’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는 책에 “술과 여자는 분리할 수 없는 보완재” “젊은 여성의 몸에는 생명의 샘이 솟는다. 그 샘물에 몸을 담아 거듭 탄생하고자 하는 것이 사내의 염원” “여성의 성을 돈으로 사려는 사내는 지천으로 깔려 있다”고 썼다. 안 후보자는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데다 평소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알려졌기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그러자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안 후보자의 책에 논란을 제기한 언론 보도를 ‘악마적 발췌편집’이라고 비판했다. 책의 전체적 맥락을 보지 않은 채 문제가 될 문장 몇 개만 뽑아 ‘짜깁기식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여성단체가 주는 ‘여성권익 디딤돌상’을 받은 안 후보자는 ‘친여성주의자’”라고 했다. 안 후보자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악마의 편집’ 피해자가 된 것인지, 부적절한 여성관을 갖고 있었는지를 인사청문회에서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게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부여된 ‘책임’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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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