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21분간의 혈투 후 조코비치가 정현의 가슴과 어깨를 두드렸다. 경기 전후 선수 간 인사는 테니스의 오랜 관습. 하지만 패자가 미소를 띤 채 승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는 모습은 조금 특별했다. 바로 직전 혈투를 벌인 선수들이라기보다 마치 스승과 제자 같은 모습이었다. 정현은 “조코비치가 다음 경기도 잘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현이 22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6강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를 3-0으로 제압하고 경기를 끝낸 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멜버른 _ 로이터연합뉴스

정현과 조코비치의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4회전은 테니스가 왜 아름다운 스포츠인지를 보여주었다. 일진일퇴의 경기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진정성과 아량이 담긴 언사가 더 눈길을 끌었다. 정현은 승리 후 인터뷰에서 “조코비치는 나의 어릴 때 우상이었다”며 “그가 투어에 복귀해 기쁘고, 그를 상대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치켜세웠다. 조코비치는 취재진이 오른팔꿈치 통증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자 “정현의 승리를 깎아내리는 행위를 그만해달라”며 “그가 더 뛰어났다”고 말했다. 팔꿈치 부상이 승부에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한데도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강자의 품위가 느껴진다.

잘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멘토와 멘티 관계이다. 조코비치는 정현이 주니어 선수일 때부터 눈여겨보고 여러 차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정현은 조코비치의 샷을 보고 연마해왔다. “조코비치는 왕성한 그의 젊은 버전과 경기했다”(CNN), “조코비치가 지난 5년간 모두에게 했던 것을 지금 정현이 조코비치에게 하는 중”(테니스 선수 제이미 머레이)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정현은 2년 전 호주오픈 1회전에서 조코비치와 만나 완패했다. 하지만 이제 우상과의 첫 대결이 너무 떨려 아침밥도 못 먹었던 소년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 테니스대회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정현이 더 큰 선수로 성장하기 바란다.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랭킹 1위에 메이저대회 12회 우승 기록을 보유한 최강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현이 이번에 청출어람의 기세를 떨쳤지만 부상을 떨쳐낸 그와 다시 만난다면 승부의 추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기를 기대할 뿐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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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